August 14,2012     
                  
 
 ‘페니 프레스(Penny Press)’는 한부당 1센트의 신문이었다. 1883년 뉴욕선지의 발행인 벤자민 데이는 당시 임금노동자의 월수입과 맞먹은 6센트의 신문가격을 파격적으로 내리면서 모든 사람들이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신문을 선물한 데이가 있었다면 광고유치에 따라 돈줄을 간파한 퓰리처와 허스트는 공룡언론을 잉태시켰다.  뉴스기사·발행부수·광고로 이어지는 삼각함수는 매스 미디어 비지니스의 패러다임으로 굳어졌다. 
 
 이때부터 사회적 공기란 저널리즘의 본질도 변했다. 독자를 붙들기 위해 온갖 선정성 폭로기사를 양산했다. 궁극적으론 광고유치를 위해 언론의 양심을 파는짓도 서슴지 않는 행태가 만연했다. 언론계는 이를 두고 ‘want’와 ‘need’ 사이의 균형유지를 위한 노력이라고 자평한다. 독자들이 꼭 봐야할 심층 기사를 만들기 위해 광고주를 기쁘게하는 기사 제작도 필요하다는 변이다. 하지만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와의 거래’와 다를바 없으며 이런 비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comment :(1) hit:(3241)  

August 06,2012     
                  
 
 시작은 미미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격언이 생각나게 만든 이벤트였다. 2010년 1월 신년벽두 애플의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스티브 잡스는 마침내 아이패드(iPAD)를 선보였다. 9개월전 간이식 수술을 받은 후 여전히 잡스의 얼굴은 초췌해 보였지만 그는 지난 수년 동안 부인해왔던 “미스터리 타블렛”의 실체를 손에 들고 있었다.
 
 갸날퍼진 그의 체구였지만 목소리는 어느때보다 또렸하고 낭랑했다. 그는 반짝이는 아이패드를 손에 들고 그 어느때보다 신중하고 집중한 자세로 신제품을 설명했다. “아이패드는 아이폰과 노트북의 중간자적 모바일 기기”란 설명과 함께 “애플은 항상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발전을 모색해왔다”고 선언했다.
 
comment :(0) hit:(3213)  

August 06,2012     
                  
 
 입력시간 :2012.07.31 10:00
 http://www.edaily.co.kr/news/column/ColumnRead.asp?col_cd=W&DCD=A01004&sub_cd=OW04&newsid=01587526599600096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중 하나인 AT&T의 엄살이 지나치다. AT&T는 지난해 아이폰과의 독점판매 관계를 정리하면서 아이폰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해왔다. 인기도 없는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를 탑재한 노키아 루미나(Lumina) 900을 AT&T 주력 스마트폰으로 밀어부쳐왔고 보유한 스마트폰중 보조금이 가장 높은 아이폰 때문에 많이 판매 할수록 회사 손해가 크다는 언론플레이까지 서슴지 않았다.
 
comment :(0) hit:(3122)  

July 21,2012     
                  
 
 한때 지구촌 휴대폰 시장을 좌지우지했던 노키아. 북유럽의 작은 나라 핀란드의 국민기업이다. 보급형에서 고급형까지 GSM 휴대폰을 선보일때마다 노키아의 창조적 디자인은 소비자의 촉각을 흥분시켰다. 하지만 애플 아이폰으로 촉발된 새로운 스마트폰 시장에서 안드로이드까지 가세하자 노키아는 속수무책 침몰하는 배의 신세였다. 
 
 정작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최대지분을 가졌던 노키아는 시대정신과 사용자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재미난 사실은 심비안과 Meego 등 두개의 모바일 운영체제를 동시 개발했던게 바로 노키아였다. 심비안은 노키아의 오리지널 스마트폰 운영체제로 적통의 신분이었고 Meego는 심비안의 단점을 뛰어넘어 인텔과 함께 오픈소스로 합작개발했던 터치기반 운영체제. Meego는 iOS와 안드로이드 보다 더 훌륭한 잠재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comment :(0) hit:(3027)  

July 20,2012     
                  
 
 아이폰 개발이 한창일 당시 스티브 잡스의 철저한 보안유지로 인해 전세계 테크 언론들은 애플의 타블렛 출시여부에 더 촉각을 곤두세웠다. 2003년부터 시작된 타블렛 연기는 애플 관련 기사의 단골 메뉴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잡스는 “타블렛은 애플의 방향과 맞지 않는다”고 연막을 펼쳤다.
 
 사실 타블렛 컴퓨터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시초다. 창조적인 일과 거리가 먼 회사였기에 지금까지도 MS 창립자인 빌 게이츠는 자신의 최대작품으로 타블렛을 꼽는다. 20001년 게이츠는 컴퓨터 제조사를 설득해 노트북 이후를 담보하는 타블렛 노트북의 출시를 밀어붙였다. 
 
 당시의 타블렛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일단 외형 측면에서 노트북과 타블렛은 구분짓기 어려웠다. 차이점은 단지 펜모양의 입력도구 스타일러스와 이를 위한 터치스크린 LCD 모니터였다. 모니터위에 스타일러스를 누르는것으로 마우스를 대체했고 직접 글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하드웨어 보다 소프트웨어가 너무 앞서간 대표적인 사례였다. 사용목적이 불투명했고 타블렛 LCD는 스타일러스 입력을 위해 스크린위에 특수 코팅 레이어가 포함됐고 이 때문에 모니터는 뿌옇게 보였다. 그럼에도 게이츠의 타블렛 찬양은 끝이 없었다. 
 
comment :(0) hit:(3121)  

[1][2]3[4][5][6][7][8][9][10] ..

 LA
 SEOUL
   JP
   Mission Viejo, CA,
   United States
   THE GREEN FUSE (RSS 구독)
   LaymenBlog
   x86os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