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2.0] 17. Crazy ones...

October 07,2011                      hit:(3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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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5일 스티브 잡스가 타계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97년 눈덩이 적자구조와 직원들의 사기하락 그리고 투자자 이탈이란 풍전등화 신세의 애플이었다. 하지만 스티브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1억5천만달러의 투자 유치를 이뤄냈다. 또 애플이 갖고 있던 런던기반의 CPU회사 ARM 지분을 매각해 8억달러의 자금을 확보했다. 이제 숨을 고르고 미래를 향한 비젼을 제시할 차례였다.

당시의 잡스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너무 생각이 많아서 화장실 나올때 물내리는것도 잊어먹을 정도”라고 말하곤 한다. 워코홀릭이 따로 없었다. 잡스는 애플 살리게 집중해있었다.

그는 애플의 리더로서 2가지 전략을 수립한다. 첫째는 애플의 자존심 회복과 미래지향적인 마케팅 홍보기획이고 두번째는 800-900달러대의 All-In-One 매킨토시 신상품 개발이었다.

기업회사에서 홍보와 제품 개발은 동전의 양면이다. 회사 제품과 이미지가 맞아떨어질때 충성도 높은 고객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며 경영의 기초다. 혁신적인 신제품 개발에만 몰두했던 천방지축 잡스였지만 어느새 기초를 가장 우선시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규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잡스였지만 지인들은 그가 스펀지 처럼 단기간에 놀라운 양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한번 본 것을 절대 잊지않는 두뇌의 소유자란 것을 잘알고 있었다. 마케팅 홍보에서 잡스 만큼의 달인은 없다. 그 배경은 애플 창업시절로 돌아간다.

그가 워즈니악과 함께 부친의 차고에서 컴퓨터를 조립하고 있을때 마이크 마쿨라라는 투자자를 만나 회사를 함께 꾸려나갔다. 차고에서 번듯한 팔로 알토의 사무실로 옮겼고 이때 한 건물에 기거했던 회사가 소니 미국법인이었다. 잡스는 틈만나면 소니 사무실을 찾았다. 제품 브로슈어에서부터 포스터 그리고 각종 소니 제품을 살펴보면서 일본 특유의 섬세한 디자인을 보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브로슈어의 색감과 질감 그리고 서체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왜 뛰어난 브로슈어인지를 분석했다.

다음으로 잡스에게 영향을 준 인물은 존 스컬리다. 잡스가 애플에서 나오면서 두사람은 영원히 등을 지고 살았지만 적어도 스컬리는 미국최고의 마케팅 전략가였고 이런 지식을 잡스가 흡수한것 만큼은 사실이다.

스컬리는 와튼스쿨을 나온 수재로 41살에 펩시콜라 대표이사에 발탁됐다. 이유는 획기적인 마케팅 홍보 전략의 성공 때문이었다. 70년대 초 펩시는 경쟁사 코카콜라에 이어 2번째 음료회사였지만 그 격차는 너무 컸다. 스컬리는 미국 최초로 “Envy Marketing” 개념을 도입한 장본인. 할리웃 영화속 주인공들이 펩시를 마시는 장면을 삽입하는 Placement AD를 처음으로 시도했고 TV 광고에는 인생을 즐기고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젊은세대를 내세워 시청자로 하여금 부러움을 느끼게 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미국 광고업계의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그 결과 펩시의 이미지는 쿨한 사람들만 마시는 음료로 변신했고 단숨에 코카콜라를 따라잡는 성과를 이뤄냈다.

스컬리가 애플에 들어왔을때 최초의 목적이 바로 이러한 자신의 노하우를 스티브 잡스에게 전수하는 것이었다. 84년 슈퍼보올 결승전 하프타임 때였다. 시청자들은 TV 광고 사상 역대 최고의 작품을 보고 있었다. 매킨토시 출시를 앞둔 애플의 TV 광고였다. 잡스와 치아트/데이 광고기획사, 그리고 할리웃 최고의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이 만든 작품이다. 좀비같은 죄수 복장의 사람들이 극장안에 모여 스크린에 나타난 빅브라더의 훈시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갑자기 뒷문에서부터 조깅복 차림의 금발 소녀가 해머를 들고 뛰어나와 빅브라더 스크린을 향해 던져버린다. 모두가 경악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1984년은 ‘1984’와 다르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상징하는 것으로 당시 컴퓨터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IBM을 ‘빅브라더”처럼 상징하는 애플의 도전적 메시지였다.

애플 경영진은 애시당초 이 광고의 이미지가 너무 격하다며 승인을 보류했었다. 하지만 잡스의 끈질긴 설득끝에 “그럼 단 한번만 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고 최고의 TV 광고 스폿인 슈퍼볼 결승전에 방영을 결정했다. 효과는 엄청났다. 슈퍼볼 하프타임때 30초 단 한번 방영됐지만 그 작품성과 놀라운 메시지 전달 효과로 인해 거의 한달동안 전미국의 방송 뉴스들이 애플 광고를 지속해서 보여주면서 지금까지도 이 광고는 전설로 남게됐다.

잡스는 추락하는 애플의 이미지를 바로잡을 광고기획에 몰두했다. 잡스는 첫째로 지목한 광고기획사는 LA에 본거지를 둔 치아트/데이. 13년만의 재회였다. 치아트/데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 크로는 잡스와는 막역한 친구였다. 그 역시 캘리포니아 태생으로 서핑에 미친 히피출신 광고기획가였다. 낮에는 말리부 해안에서 서핑하다 오후에 집무실로 들어와 밤새 작업을 하는 기인 같은 사람으로 잡스처럼 세상을 바꾸겠다는 치기와 도전적 반항아의 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애플의 본질을 돼찾는 기획에 몰입했다. 97년 크리스마스 때 LA에서 크로우와 회동한 잡스는 최종 결정을 내렸다. “Think Different” TV광고와 2D 포스터 등의 패키지 광고가 완성된 것이었다. 크로우는 가장 잡스스러우면서도 가장 애플스러운 기획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미쳤다는 소릴 들었다. 사회부적응자들이었고 반항아, 골칫 덩어리들이었다…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달랐다. 통제와 현실과의 타협을 깨부쉈다…이들을 무시할 순 있지만 거부할 순 없다…이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꿀만큼 미쳤기 때문이다”라는 멘트와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흑백 영상의 인물사진이 등장한다.

Think Different TV 광고에 등장한 인물은 아인신타인, 피카소, 마틴 루터 킹, 간디, 밥 딜런, 무하마드 알리 등 시대의 반항아들이었다. 크로우는 훗날 당시를 기억하며 “처음 영상을 접한 잡스가 되풀이해서 수십번을 보더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광고는 대 히트였다. 단순한 두 단어 Think Different 와 이미지 영상은 잡스를 울렸던 것처럼 소비자들을 감동시키며 최대의 임펙트를 끌어내냈다. 여기에 “애플은 다르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전파되고 있었다.

애플 마케팅 홍보 전략이 수립되면서 동시에 잡스는 애플을 대표하는 신상품 기획을 진행시켰다. 당시 세상은 인터넷이 화두였다. 알 고어 부통령이 입이 부르터라고 외쳤던 “정보초고속도로”의 의미가 속속히 실현되는 양상이었다. 이제껏 컴퓨터를 갖고 업무보는데 집중해왔던 사용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컴퓨터의 또다른 세상을 접하고 있었다. 치솟는 컴퓨터 수요로 인해 1200달러가 넘어가던 PC 평균가격이 1000달러 이하로 하락했고 90년대 초를 능가하는 판매 실적이 이뤄지고 있었다.

누구나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People PC”란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한국에선 IMF 여파를 타개하기 위해 IT 육성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국민 PC”란 이름으로 피씨 보급에 앞장섰다.

애플에도 역시 기회였다. 잡스는 중저가형의 All-In-One 컴퓨터 신상품에 몰입한다. 모두가 “안된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잡스는 애플이 주도하는 니치 마켓이 존재한다는 믿음하에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계획을 밀어붙였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영국출신의 조너던 아이브란 천재적인 제품디자이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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