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2.0] 26. 남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는 장점!

February 19,2012                      hit:(3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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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단 90일의 시한부 생명이었던 애플을 살리기위해 스티브 잡스는 50%이상의 감원과 빌 게이츠의 1억5천만달러를 투자받아 반투명 아이맥 신제품 개발에 올인했다. 도박은 성공이었고 애플은 기사회생했다. 2001년 MP3 플레이어 아이팟과 2003년 아이튠스를 차례로 런칭하면서 애플은 전세계를 대표하는 디지털 가전회사로 거듭났다. “토이 스토리”로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개척한 픽사는 2004년 “네모를 찾아서”까지 5편의 장편만화영화를 연속 히트시키면서 월트 디즈니에 75억달러에 합병됐다.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였던 잡스에게 “세계적인 기업가”란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게 이때부터다. 질풍노도와 같은 7년이었다.

하지만 잡스의 성공 비결에 공짜는 없었다. 도전 정신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을 꽤뚫어 본 결과물이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실패가 밑거름이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는 전사원을 상대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최대의 성취감을 이룰 수 있는 “애플 문화”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리더쉽의 변화였다.

애플 복귀후 기적적으로 경영정상화에 성공한 애플이었지만 2001년 닷컴 버블 경제붕괴로 인해 애플 주식이 60달러대에서 20달러까지 떨어지는 위기도 있었다. 엎친데 덥친격으로 회심의 역작으로 출시한 미니 데스크톱 G4 큐브는 잡스에게 뼈아픈 실패를 안겨줬다.
큐브는 8인치 정사각형 투명케이스의 매킨토시 미니 컴퓨터로 뉴욕현대미술관과 프랑스 퐁피두 미술관에 소장될 정도로 완벽한 디자인을 자랑했다. 전문가를 위한 “파워 미니 데스크톱”으로 프로모션했지만 지나치게 고가에 책정됐고 가격대비 성능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면서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넥스트 시절 잡스는 시장이 자신의 제품을 외면해도 무모하게 밀어부치는 고집을 보였지만 새로운 잡스는 지체없이 실패를 인정하고 큐브 생산을 중단하는 신속한 결단을 내렸다.

대신 아이팟과 아이튠스에 역량을 집중해 전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능숙한 경영인의 면모를 발휘했다. 특히 잡스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즈용 아이튠스를 내놓았을땐 전세계가 경악했다. 과거의 잡스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라이벌 빌 게이츠의 제품을 혐오했던 잡스였지만 실리를 택한 그의 결정은 아이팟이 전세게 MP3 시장을 싹쓸이하는데 일조했다.

이는 분명 커다란 변화였다. 40대 중반이란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이 그를 성숙한 경영인으로 바꿔 놓았을까. 잡스 관련 저서는 수십권에 달하지만 이런 내면 세계의 변화를 주목한 이야기는 전무하다. 세상을 떠나기전까지 잡스와 독대할 기회를 가졌던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도 이부분에 대한 이렇다할 설명이 없으니 이제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게됐다. 하지만 애플복귀 전후로 잡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한 친구가 있었고 그와의 관계를 통해 잡스의 변화를 추정해볼수있다.

픽사의 핵심인물은 존 레세터(54). 디즈니와의 합병으로 디즈니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대표를 맡게된 레세터는 사실 디즈니가 해고한 천재만화가였다. LA출신인 그는 캘리포니아 아트대학(CIA)를 나온뒤 디즈니에서 첫직장을 시작했다. 어릴적부터 오직 만화가의 꿈을 꿨던 그는 디즈니에 입사하자 일주일내내 회사에서 먹고 잘 정도로 일에 몰입했다.

이처럼 열정적이었던 레세터는 관료화된 디즈니 조직의 피해자였다. 일찌감치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도입을 주장했던 그였지만 손으로 작업해온 애니메이터들이 그를 좋아할리없었다. 결국 4년만에 컴퓨터에 겁먹은 간부로 인해 해고를 당해야 했다. 그리고 찾아들어간 곳이 픽사.
마이클 아이즈너회장과 제프리 카잔버그가 존 레세터를 픽사에서 다시 빼내오기 위해 온갖 달콤한 미끼를 던졌지만 픽사와 스티브 잡스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위해 꿈적도 하지않은 그였다.

레세터는 천재 만화가 이전에 타고난 리더다. 또 누구보다 팀을 앞세우는 검손한 리더다. 부하직원들의 서열을 없애고 누구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고 나타나면 직접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않으면서 가장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애니메이터에게 감독의 기회까지 주는 통큰 리더다.

그는 또 대학 졸업장 없이도 창의적인 인재라면 언제든지 영입할 수 있는 입사 규정을 만들었으며 신입사원들에게는 “픽사 유니버시티 프로그램”을 통해 창작 훈련을 직접 가르친다. 3개월 과정이 끝나면 회사 로비에서 “졸업식 파티”를 열고 모든 직원들을 한번씩 안아주면서 자신이 그린 “만화학위”를 수여하는 재미난 인물이다.

레세터의 수평적 리더십은 애니메이터와 3D 테크놀러지 엔지니어 사이의 껄끄러운 벽을 허물었다. 픽사의 사내문화는 서열없는 질서와 조화로운 자유 속에서 성장했다. 히피들의 공동채처럼 시작된 픽사는 애초 3D 애니메이션을 개발하던 엔지니어들의 회사였다. 스티브 잡스가 조지 루카스로 부터 픽사를 사들이고 회사 조직도를 보여달라고 했지만 애초부터 픽사에는 그런게 없었다. 에드 캣뮬 사장과 레세터 애니메이션 디렉터 이외에 별도의 부서나 직함이 존재하지 않던 회사였다. 모두가 엔지니어였고 동시에 애니메이터였다.

이런 레세터의 리더쉽은 픽사의 애니메이터들과 엔지니어들에게서 끊임없이 새로운 창조적 아이디어를 샘솟게 만드는 동기부여의 원천소스가 됐다. 할리웃 스튜디오 속성상 7년동안 5편의 연속 대박히트란 경이적인 전대미문의 기록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가능했다.

잡스는 이런 레세터를 수년동안 지켜봤다. 픽사가 5천만달러 누적적자에 시달리며 고생할때도 레세터의 리더십으로 일치단결한 직원들이 최고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직접 체험했다.

물론 잡스는 레세터가 아니다. 하지만 잡스에겐 남의 장점을 흡수하는 특별한 장점을 보유했다. 자신을 애플에서 추방했다는 이유로 존 스컬리와는 철천지 원수 사이를 유지했던 잡스였지만 스컬리의 독보적인 “해피 제네레이션” 창조 마케팅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또 멋대가리없이 남의것만 배낀다고 비판했던 빌 게이츠의 “적자생존” 마케팅을 받아들이면서 아이튠스 윈도즈 버젼을 출시한 그였다.

더 중요하게는 전략적 회사 결정과 관련해서 임원들의 아이디어를 흡수하는 제도를 정착시키고 있었다. 매주 월요일마다 애플본사 컨퍼런스룸에서는 부사장급 이상의 임원회의가 열렸고 이곳에서 애플의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 방향에 대한 브레인스토밍이 열렸다. 더이상 “내 말대로 따라하라”는게 아니라 “무엇이 최선의 방안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놓으라”는 자리였다. 직원들을 천사처럼 독려하는 레세터의 리더십을 빌려와 잡스식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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