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2.0] 5. 파괴로부터 시작된 신화

April 23,2011                      hit:(4280)

컴퓨터하면 집채만한 메인프레임을 연상하던 시절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타이프라이터 사이즈의 “퍼스널 컴퓨터”의 꿈을 꿨다. 나무 상자 속에 들어가는 메인보드 한장의 Apple I 이 바로 그것.

최초는 아니었지만 워즈니악의 천재적인 보드 디자인으로 76년 당시 세상을 놀래킬 만큼의 작고 간단한 개인용 컴퓨터가 출현했다.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을 기대해온 얼리어 댑터들에겐 충분한 것이었지만 잡스와 워즈니악은 만족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곧바로 Apple II 개발에 몰입한다. 퍼스널 컴퓨터 최초의 매스 마켓을 창조하기 위해선 좀더 개선된 성능과 그럴듯한 완제품 형태가 요구됐다. 하지만 자금이 문제였다.

애플 컴퓨터란 회사는 히피 촌놈들의 황당드림으로 시작했을 뿐 “비지니스 101”을 이해한 사람은 전무했다. 그저 컴퓨터 하나 만들어 보자는 생각만 있었을 뿐. 이 때 스티브 잡스에게 회사를 이끌어 줄 진정한 능력자가 나타난다.

33세의 마이크 마쿨라는 이미 Intel 이란 첨단기업에서 스톡옵션을 행사해 상당한 부를 축적한 전문 경영인. 그는 조기 은퇴후 벤처 투자회사의 자문역을 맡으면서 실리컨 벨리의 괜찮은 벤처 회사를 찾던 중이었다.

잡스는 회사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사를 열심히 찾았다. 하지만 개인용 컴퓨터 세상이 올것이란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에 귀기울인 투자가들은 전문했다. 굴하지 않고 열심히 발품팔던 잡스는 결국 지인들의 소개로 마쿨라까지 만나게 된다. 첫 미팅에서 잡스는 Apple II의 개발계획과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때 잡스는 “5년안에 애플 컴퓨터가 포츈 500대 기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큰 소리쳤다.

마쿨라는 다른 투자자들과 달랐다. 잡스의 컴퓨터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줬을 뿐더라 잡스의 이야기속에서 미래를 확신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잡스에게 투자제의를 했다. 8만달러의 현금과 17만달러 융자 조건에 30% 애플 주식. 이렇게해서 잡스와 워즈니악, 마쿨라는 회사 지분을 3분할했고 애플 컴퓨터는 25만달러의 자본금을 손에 쥐었다. 이때가 1976년 가을이었다.

마쿨라는 2차 투자유치에 성공, 1백만달러의 추가 자본금을 확보하면서 회사 재정을 튼실히 했다. 잡스의 부모집 차고를 떠나 제대로된 사우실도 찾았다. 워즈니악에게는 소프트웨어 로딩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카세트 대신 플로피의 도입을 제안했다. Apple II에 컴퓨터 최초의 외장 플로피 드라이브가 따라온 것이다.

또 가정용 컴퓨터를 상상했던 잡스와 달리 그는 “업무용이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초보적인 스프레드 쉬트 프로그램 개발을 지휘했고 이는 훗날 Apple II 성공의 단초를 제공했다. 마쿨라는 또 애플 컴퓨터의 미래를 위해선 한시적이라도 전문경영인이 필요하다고 잡스를 설득해 애플 최초의 CEO 마이클 스캇을 불러들였다.

Apple II 출시는 세 사람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준 “최초의 대중 PC”이면서 전세계 최대 테크 회사인 IBM을 한순간에 화석만 남은 공룡 회사로 만들어준 사건이었다. 매니아들 뿐만아니라 일반 사람들까지 Apple II 컴퓨터에 관심폭증을 유발했고 애플은 단숨에 넘버 1 개인용 컴퓨터 제조사로 부상했다.

창업 3년만에 애플컴퓨터는 직원 4천명 규모의 회사로 초고속 성장가도를 달렸고 80년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1954년 포드자동차 상장이래 최대의 성공적인 IPO였다. 잡스 스스로도 당시를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 24살에 나는 수백만달러를 거머줘었고 1년후엔 수천만달러, 또 1년후엔 수억달러를 가질 수 있었다.”

벤처 신화의 시조였던 잡스는 실리컨 벨리의 Rock Star였다. 준수한 외모에 화려한 언변 여기에 컴퓨터 하나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의지를 보였으니…하지만 그렇게 잘나가던 잡스에게 전혀 다른 인생행로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잡스였지만 그에 대한 내부의 비토세력이 커지고 있었다. 약관의 나이에 세상을 거머쥔 잡스의 공식 직함은 이사장. 실질적인 권한의 직책은 아니었지만 그는 맘대로 하고싶은 일을 했다. 당시 잡스를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오만방자의 극치였다. 겸손이란 털끝만큼도 없었다. 또 조직을 공포정치로 다스리며 파벌조장에 앞장섰다.

당시 애플 컴퓨터의 개발부서는 워즈니악이 이끄는 Apple III팀와 차세대 업무용 컴퓨터 리사팀. 그 다음으로 아무도 모르는 매킨토시 개발 팀이 존재했다. 누구도 잡스와 일하길 원치 않았다. 잡스로서는 워즈니악 팀엔 끼어들 수 없었다. 리사와 매킨토시 프로젝트 팀장들은 모두 망나니 잡스를 피했다.

애플 경영진과 마쿨라는 Apple II 를 이을 제품으로 리사를 선택했기 때문에 잡스에게 매킨토시 팀을 지휘하도록 역할을 분담했다. 잡스 역시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흔쾌히 매킨토시 팀을 접수했다. 그의 선구안은 정확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 리사는 1만달러가 넘어가는 가격 때문에 실패작이 되고 만다. 한편 84년 잡스는 세상을 바꿀 혁명적인 GUI 기반의 매킨토시를 개발완료했다. 적어도 기술적으로 또 테크월드의 역사적 가치로는 대성공이었다. 완벽한 하드웨어 디자인에 마우스를 이용한 매킨토시와 같은 컴퓨터가 경쟁사에서 나오기까지 이후 11년이 지나서였다. 8인치 모니터까지 장착된 올인원 디자인의 매킨토시를 처음으로 소개했던 85년 슈퍼보울 하프타임 30초 광고는 지금까지 회자되는 가장 유명한 TV 광고다. 디자인, 창조적 운영체제, 도발적인 마케팅은 잡스의 능력을 함축적으로 설명하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이 이런 능력을 너무 일찍 본게 문제였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제품개발 능력을 보여준 잡스였지만 파벌대립으로 회사내부의 사기는 피폐해졌고 더 중요하게 2천4백달러의 가격으로 출시한 매킨토시 판매가 저조했다. 출시 반년동안 겨우 5만대정도 팔렸다. 임직원들과 시도때도없이 충돌하는 안하무인격의 잡스가 문제의 진원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사실 애플 경영진은 이미 잡스없는 애플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있었다. 바로 잡스가 개발한 매킨토시 때문이었다. 당장의 판매율은 저조했지만 애플의 주력상품은 여전히 Apple II로 컴퓨터 제조업계 2위의 자리를 지켰다. 또 매킨토시는 경쟁사 제품에 비해 10년 이상을 앞서는 기술력을 입증했기에 이사회와 경영진은 느긋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잡스는 자신을 조여오는 압박의 진원지가 자신이 스카웃한 CEO 존 스컬리임을 알아내곤 그를 제거할 이사회 쿠데타를 기도했다. 스컬리를 출장보낸 사이 대표이사 자리에 자신이 앉겠다는 계획을 꾸몄지만 이를 눈치챈 스컬리는 비행장에서 사무실로의 회군을 결정하고 잡스와 정면대결했다. 마쿨라와 이사회는 연륜의 스컬리를 선택했다.

애플 컴퓨터에서 잡스를 공식적으로 해고한적은 없다. 잡스는 자신의 계획이 무산되자 배신감을 갖고 스스로 회사를 떠났을 뿐이다. 비참한 최후였다.

잡스가 사라진 이후 애플 컴퓨터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매킨토시를 갖고도 서서히 파멸의 길로 들어섰다. 90년대 들어 결국 회사는 누적 적자에 시달리게 됐고 97년 잡스가 대표로 복귀할때 파산일보직전의 상황이었다. 컴퓨터 문외한인 스컬리는 안일한 생각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매킨토시만 있으면 모든게 해결될 것으로 믿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개발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양산했고 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사용자는 더욱 늘어난 것이다.

매킨토시의 강점은 사실 소프트웨어에 있었다. 하지만 애플에선 누구도 이런 생각을 못했다. 그저 하드웨어만 있으면 장사가 된다는 생각뿐이었고 93년 스컬리의 사임이후 애플은 더욱 더 난파선과 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하지만 애플 신화는 이렇게 시작했다. 더이상 떨어질 곳 없는 나락의 상황, 철저하게 파괴된 상황에서 바닥을 치고 다시 일어서면서 신화가 된 것이다. 물론 그 시작과 끝은 바로 잡스의 리더쉽이었다.

애플을 떠나기 직전 잡스는 이미 세가지의 경영철학을 완성했다. 첫째 예술품과 같은 완벽한 하드웨어 디자인, 둘째 사용자 경험치를 우선하는 소프트웨어, 세번째 독창적인 마케팅 기법. 80년대 중반 시대를 앞서는 그의 능력을 꽃피우진 못했지만 절치부심하는 그에겐 두번째의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comment : (5)

jp   2011/04/27 05:26 [delete] Reply
안녕들하세요...댓글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요즘 스티브잡스 2.0은 미주중앙일보 경제면에 격주로 토요일자에 게재되는 중입니다. 이번 글은 저두 바빠서 넘 급하게 쓰다보니 좀 부실하다는 느낌입니다만 여러분께서 힘내게 해주시내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원고지 20매 분량으로 한회한회를 마감하다 보니...또 격주란 이유땜에 이어지는 글보다는 그때그때 하나의 소재로 아이템화 시켜보고 있습니다. 물론 시간적인 프레임을 적용해야겠죠. 80년대 90년대 2000년대...그래서 아직도 80년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miser님 마쿨라는 97년 스티브 잡스가 애플 CEO로 복귀했을때...이사직을 사임했습니다. 스스로 나간것이지만 아무래도 회사가 그 지경이 된 것에 대한 책임성 사임이라고 봐야했죠. 또 잡스는 자신의 경영을 밀어부치기 위해서도 이사진의 물갈이를 고려했을 겁니다...ㅋ

시큐어님 센아빠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기타리스트님...laymenblog.com 과 그곳 포럼에 자주 놀러오세요...ㅋㅋ

   

guitarist   2011/04/27 04:33 [delete] Reply
오랜만에 좋은글 보고 갑니다^^ 요즘도 잘지내시죠?ㅎㅎ

   

misner   2011/04/27 03:56 [delete] Reply
오랫만에 글 올리셨네요. 기다린 보람있게 좋은 비사 잘 읽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마쿨라도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시큐어   2011/04/26 05:24 [delete] Reply
너무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님의 글은 늘 기다려집니다. 댓글을 달아 드리는 것이 좋은 글에 대한 예의인 듯 싶어서 글을 남깁니다.

   

센아빠   2011/04/25 01:38 [delete] Reply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개발 조직도 역시 정치가 들어갈 수 밖에 없군요. 오히려 젊을 때 혼탁한 정치가 나이 먹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수수한데요. 쿠데타 실패한 젊은 잡스가 배신감을 느끼고 혼자 떠난 것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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