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기자 2.0 ㅋㅋ

February 27,2011                      hit:(4735)

Link#1 :
Link#2 :

문화일보 퇴사한 이후 10년만에 첨으로 제 글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언론계 복귀는 아니지만…자유기고가로서의 활동이 새롭게 시작되는 군여.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page=1&branch=LA&source=LA&category=economy&art_id=1161103

88년 가을 처음으로 LA 미주중앙일보를 통해 사회입문했습니다. 인디애나대학에서 신문학 전공을 마치고 친구하나 믿고 무일푼으로 찾아온 Wild West 였죠. 학비를 벌겠다고 시카고와 세인트 루이스 등지에서 청소와 세탁소, 중국 음식점을 전전하던 생활을 뒤로하고 찾아온 LA는 정말 미지의 세계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한국사람!

모래 바람 날리는 삭막한 엘에이에서 빨리 돈은 벌어야겠는데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했습니다. 어느날 밤 친구 아파트 로비에 흩어진 신문사이로 "기자모집"한다는 큼직한 제목에 가슴이 벌렁거렸습니다…ㅋㅋ 정말 어렸죠. 첫 월급에서 세금을 제외하니 8백달러 남짓했습니다. 처음 받아본 월급을 손에 쥐고 코가 시큰거린것두 잠시 몇달이고 저를 도와준 친구에게 빚부터 갚아나가는게 우선이라 하룻만에 사라진 금액이었습니다.ㅋㅋ

이후 엘에이 코리안 커뮤니티 기자라는 직함을 활용해 LA Times의 Correstpondent가 됐습니다. 당시 생각해보면 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학교에서 익숙해졌던 영어식 기사작법과 울나라 언론의 "도제식 야마우선" 기사작법의 차이에서의 충돌이 있었죠. LA Times Calendar섹션에 처음으로 제가 올린 기사는 "MBC 주부가요열창 엘에이 녹화" 관련이었습니다. 당시만해도 미국은 카라오케 문화가 몬지 모르던 시절이라 담당에디터는 너무 재미난 내용이라고 좋아 하더군요.

그 영어기사 하나가 제 운을 바꿔놓았습니다. 미주중앙일보의 골치덩어리가 하루아침에 샤이닝스타로…^^ 그렇게해서 89년 가을까지 1년 남짓한 엘에이생활을 접고 중앙일보 본사로 들어갔습니다. 꿈에 그리던 한국생활은 사실 제 목을 제가 조른 사건이었습니다. LA LaLa Boy가 순화동에서 2년 버티다가 너무 사는게 싫어져서 다시 엘에이 중앙일보로 돌아왔죠. 하지만 그때도 만족 못했습니다. 엘에이 교육구에서 교사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제게 맞는 직업이란 생각을 하던중에…ㅋ 94년을 며칠 앞두고 문화일보 경력기자로 다시 한국으로 고고싱!

이상하게도 직장생활이란게 주변사람들과 친하게 어울리다보니 회사가 제 연인처럼 느껴지더군여… 저는 지금도 문화일보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말하곤 합니다. 그곳에서 영모형 홍국후배와 함께 기획취재팀으로 일한 10개월은 제 기자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자평합니다…ㅋㅋ

벤처 꿈에 휘둘려 생각도없이 하룻만에 사표내고…지금까지 고생입니다. 옆구리 찔리고 뒤로 자빠지고 뒤통수에서 피도나고 자뻑이란것도 수없이하고…그럴때마다 문화일보 친구들이 생각나곤 했습니다. 처음엔 무서워서 돌아가고 싶기도 했고요. 하지만 사업이란게 돈 못벌고 당장 망할거 같아도…"내일은 무슨일이 벌어질까"하는 생각이 드는게 그냥 재밌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보다는 미국서 바이어 찾는게 급해서 2004년부터 다시 객지생활입니다. 떠나지도 못하고 나하나 믿고 버텨주는 2명의 서울직원들과 열심히 돈벌이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ㅋ

2009년 봄부터 조금씩 개인 블로그를 만들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제 취미가 일반 PC에 맥 OS X 설치하는 이른바 해킨토시! ㅋㅋ 컴맹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애플과 스티브잡스 이야기가 너무 재밌더군여. 저의 글쓰기 2라운드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블로그의 글 목록을 보니 꽤 많이 써놓았습니다. 여전히 후배들과 친구들이 있는 미주중앙일보에서 이번에 저의 스티브잡스 따라잡기를 격주로 연재하고 싶다고…

제 멋대로 갈겨 쓴 글인데 아무래도 신문체 버젼으로 바꿔야하겠죠. 얼마나 오래 연재가 될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거야 신문사 맘이니까…ㅋㅋ 하지만 오늘 처음 실린 제 글을 보니 첫 직장 잡았을때의 설레임에 조금 혼자 감동먹었습니다…전 여전히 철부지입니다…^^

대학에서 공부할때 I F Stone의 스토리에 심취했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좀 삐딱이긴 했나봅니다. 1인 신문쟁이로 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독야청청 혼자 만드는 주간지, I. F. Stone Weekly를 발행 (아…부인이 일등공신입니다…^^)해 일약 "기자들의 기자"로 불렸던 미국 언론인입니다. 50년대초 매카시즘의 광풍과 마녀사냥이 몰아칠때 혼자 맞짱떴던 그의 말이 생각납니다. "I have been a newspaperman all my life. I was fortunate in my employers. I rarely, if ever, felt compelled to compromise with my conscience…I am a wholly independent newspaperman, standing alone, without organizational or party backing, beholden to no one but my good readers."

제가 지금 그 심정이라고 하면 약간 우습죠…ㅋ 그래도 좋습니다, 인터넷과 블로그 그리고 페북이 존재하는 지금 세상이… ^^ 언제까지 일진 몰라도 제가 좋아라하는 이야기 전달에 제 기자인생 2.0을 걸어봅니다 !

PS: 제기사 스크랩하던 버릇이 없어서...그냥 혼자생각만했었는데 "컴도사" 울 집사람이 찾아줬다는... ㅋ
정애님 감사합니다…꾸벅 ^^

http://articles.latimes.com/1989-05-12/entertainment/ca-3199_1_south-korea-housewives-young-chu

http://articles.latimes.com/1989-08-09/entertainment/ca-176_1_american-dream

comment : (12)

스포츠   2019/06/02 04:08 [delete] Reply

루카스모우라

브라질 축구 레전드 히바우두가 루카스 모우라 토트넘 의 왼발의 기적에 감탄했다.


   윤경 시쿠   유럽 축구 연맹 챔피언스 리그 UCL 에서 맹활약한 지 이에후 26 이 아약스를 떠날 것으로 보인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최고 스타는 단연 지예프다.

 헬렌 벤의 유소년 팀을 거치며 2012년 프로 무대에 데뷔한 지 이에후은 2016년 아약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적응기간은 필요 없었다.

 첫 시즌부터 42경기 10골을 기록한 지 이에후는 팀을 유럽 리그 준우승으로 이끌며 맹활약했다.

 이 시즌 역시 39경기 9골을 기록하며 활약을 계속했다.

그리고 맞이한 이번 시즌, 잠재력이 폭발했다.

 47경기 21골 21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환상적인 시즌을 보냈다.

 또 챔피언스 리그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결정적인 골을 기록, 아약스를 4강까지 진출시켰다.

이런 자예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을 비롯해 레알 마드리드, 토트넘 등이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아약스는 그의 이적을 허용할 전망이다.

 아약스의 단장 마크 오베르마스는 17일 현지 시간 '거울'에 실린 인터뷰에서 "톱 클럽의 제안이 있다면 지나 이에후은 떨어지고 있다.

 그는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성과로 주목받고 있다.

 많은 빅 클럽들이 그를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는 그에게 좋은 제안이 있으면 합의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챔피언스리그중계


포르투갈 언론이 F 포르투 골키퍼 이켈 카시야스의 은퇴 보도를 낸 가운데 선수 본인은 은퇴를 적극 부인했다.

ABC등 여러 포르투갈의 언론은 17일 한국 시간 훈련 중 심근 경색으로 쓰러졌고 수술을 받은 FC포르투의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가 은퇴를 공식 발표한다고 보도했다.

카시야스는 지난 하루 오전에 있던 FC포르투의 오전 훈련 세션을 소화한 길에 갑자기 심장 마비로 쓰러졌고 즉시 의료진의 치료를 받은, 이케르 카시야스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수술을 받고 5일 만에 퇴원했다.

그러나 심장질환이 있는 상황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무리라는 전문의들의 판단을 내리고 카시야스는 주치의의 의견을 받아들여 은퇴를 결정했다고 포르투갈 현지 언론은 전했다.

그러나 카시야스는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이를 적극 부인했다.

 카시야스는 자신의 은퇴 기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내가 은퇴할 날이 언젠가는 올것이다.

 그때가 왔을 때 내가 직접 은퇴를 발표하게 해 달라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은퇴를 부인했다.

현재 주치의의 진단을 받고 회복된 카시야스는    ;"나는 주치의와 내 심장을 다시 바라봤고, 경과가 아주 좋다.

 모두 함께 나누고 싶어, 정말 좋은  야.

 지금은 모두 침묵을 지켜야 할 때다.

그러면서 아직 은퇴를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했다.

카시야스는 당분간 재활과 치료를 통해 현역 복귀 가능성을 테스트할 것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축구중계


양희조 왼쪽 와 로웬 필거가 서로 마주 보며 파이팅을 하고 있다.

 제주 권인하  

영어 선생 로웬 필거는 한국어로 각오를 다졌고 양희조는 힐을 신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로웬이 피는 것과 양히쵸은 17일 제주 오리엔탈 호텔에서 열린 구운. 몰 ROAD F YOUNG GUNS 42제주 기에치에랴은을 통과했다.

 스포츠웨어 차림으로 온 필거와 달리 양희조는 정장에 힐을 신고 눈길을 끌었다.

 미국 시애틀에서 왔다는 필거는 안녕하세요, 로웬입니다.

 양희조는 제주에서 데뷔하게 됐으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가 17일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와 NBA 미국 프로 농구 서부 콘퍼런스 결승 7전 4선승제 2차전 홈 경기에서 114대 111로 이겼다.

 이날 승리로 워리어스는 시리즈 전적 2승으로 앞섰다.

워리어스는 3쿼터 초반 17점까지 뒤졌다.

 하지만 에이스 스티븐 커리와 클레 톰슨의 외곽슛이 터지면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카레는 3점 슛 4개를 포함 37점 8리바운드 8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톰프슨도 24점을 도왔다.

트레일 블레이저스는 워리어스보다 2배나 많은 3점 슛 18개 을 성공했지만 칼레의 원 맨 쇼를 막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3차전은 19일·트레일 블레이저스 홈 모다 센트에서 펼쳐진다.


한국 프로 농구 1호 귀화 선수로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우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전태풍. KCC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그는 은퇴 기로에 섰다.

    DB

프로 농구 전태풍 39 는 2009년 귀화 선수 특별 드래프트에서 KBL에 합류한 '귀화 1세대'선수이다.

 당시 KCC유니폼을 입은 그는 센터 하승진과 함께 KCC의 전성기를 이끌며 2010~2011챔프전 우승을 이뤘다.

 오리온과 KT를 거쳐서 2015년 다시 KCC에 복귀했다.

 KCC로 7시즌 동안 253경기를 뛴 프랜차이즈 스타다.

  2018~2019시즌을 마치고 자유 계약 선수 FA 이 된 전태풍이 KCC와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코트를 떠날 위기를 맞았다.

 선수가 아니면 코치로 KCC에 남고 싶었지만 구단의 계약 의지가 없었다.

 같이 못 한다는 얘기만 했다고 말했다.

 KCC는 아직 감독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코치를 먼저 선임하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는다.

 정태풍과 진지한 논의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정태풍은 KCC에서 보낸 마지막 두 시즌은 허공으로 지나간 것 같다,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지난날의 추억도 떠올렸다.

 길게 보면 한국에서 농구선수로 보낸 시간은 정말 행복했다.

 한국을 사랑해 KBL에 왔는데도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세 아이의 아빠도 됐다.

 이만한 큰 선물은 없다.

자신을 아껴준 KC 팬에 대한 감사 표시도 빼놓지 않았다.

 정태풍은 처음에는 귀화선수에게 낯설었을 텐데 많은 사랑을 보내주셨다.

 다른 귀화선수들도 그런 애정을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래의 고민도 털어놓았다.

 어떤 역할이라도 맡겨주면 다른 팀으로 옮기고 싶다.

 하지만 나를 받아줄 구단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번에 은퇴를 결정한 하승진과 진로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했다.

 전태풍은 선수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으면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젊은 유망주를 키우고 싶다며 나는 미국에서 자유롭게 농구를 배웠다.

 하지만 한국 농구에 적응하다 나만의 스타일을 잃은 것 같아 아쉽다.

 젊은 선수들이 자기만의 농구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야구중계

원 소속팀 창원 LG와의 결별이 유력한 김종규.   KBL

프로농구 FA 시장의 최대어 김종규는 전주 KCC와 원주 DB 중 하나가 될 전망이다.

지난 시즌까지 창원 LG소속이었던 김종규는 전 소속 구단과의 협상 마감일인 15일까지 LG와 재계약에 실패하고 FA시장에 나왔다.

 LG는 김종규에 보수 총액 12억원 연봉 9억 6,000만원, 인센티브 2억 4,000만원 과 함께 5년 계약을 제시했으나 결국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 했다.

 이 과정에서 사전 접촉으로 한국농구연맹 KBL  재정위원회가 열리기도 했지만 KBL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김종규의 FA 권리를 그대로 인정했다.

김종규 영입을 원하는 구단은 20일까지 KBL에 영입 의향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미 LG와 진실 공방까지 벌이고 있지만 김종규가 LG에 잔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행 FA규정에 의해서 다른 구단이 김종규를 영입하기 위해선 원, 소속팀 LG가 제시한 12억원 이상 보수 총액을 제시해야 한다.

행선지는 KCC와 DB의 2팀으로 압축됐다.

 현재 KBL의 샐러리 캡의 제한은 25억원이며 이를 고려하면 김종규를 영입할 수 있는 팀은 많지 않다.

 부산 KT도 후보군으로 분류됐지만 김영환 4억 7,000만원 과 킴융테 2억원 와 차례로 재계약을 맺은 만큼 김종규의 획득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

이로써 김종규의 프로농구 전체 보수가 가장 많은 금액 경신은 기정사실.

 종전 기록은 2017년 안양 KGC에 KCC에 이적할 때 이정현이 받은 9억 2,000만원이다.

 김종규는 이를 단숨에 넘어 총액 12억원 이상의 계약을 받을 유력하다.

 자유계약시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김종규의 다음 시즌 유니폼은 다음 주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미국 프로 야구 LA다저스의 류현진 31  은 4년 전 이맘때, 왼쪽 어깨 수술을 했다.

 수술 두 달이 넘었을 때 LA에서 그를 만날 일이 있었다.

 당시 류현진은 어깨 재활, 하체근력 운동 등을 하다 보니 하루가 짧았다.

 다만 언론과의 접촉은 자제했다.

 국내에서는 재기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목소리만 많았다.

어쩌면 투수 인생 최악의 시기였을 텐데 류현진은 편안해 보였다.

 경기에 나가는 것보다 재활이 더 힘들다거나  구단 측이  저녁에 육류가 아닌 흰살생선을 먹으라고 했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낙천적인 성격이 1년 이상 지속된 재활을 견딘 힘이 아닌가 생각이다.

류현진은 몸을 만들려고 2015년을 날렸다.

 2016년 7월 단 한 경기에 출전, 패전 책임을 졌다.

 2017년에는 5승 9패로 회복의 조짐을 보였다.

 2018년에는 허벅지 부상으로 100일 1군에서 제외되는 시련 속에서도 7승 3패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메이저 리그 7년째인 2019년은 환상적이다.

 시즌 초반에는 언제나 8경기에 출전, 5승 1패 을 거뒀다.

 지금 같은 상승세라면 20승은 물론 최고 투수에게 돌아가사이영 Cy Young 씨도 노릴 만하다.

 특히 타자 189명을 상대하면서 삼진 54개를 잡는 동안 볼넷은 3개만 용서했다는 점이 화제다.

 앞선 6년간의 평균 삼진 3.58개 볼넷 1개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삼진 18개에 볼넷 1개꼴이다.

잘 던지는 비결을 생각하면 복합적일 것이다.

 류현진의 올해 직구 평균 속도는 시속 145㎞다.

 메이저 리그 평균인 150킬로에 못 미친다.

 하지만 직구와 변화구 등 5~6개의 볼이 함유되어 타자를 요리하는 능력이 탁월한다.

 구종을 금방 외우거나 매년 조금씩 변형해 활용하는 것도 알 수 있다.

2006년 한화 신인 시절에는 선배 구대성에게서 전수 받은 체인지 업을 한달이 지나지 않고 실전에서 구사했다.

 일반적으로 투수가 한 종류의 공을 습득하는 데 몇 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류현진의 습득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 무대에 진출한 동료 클레이턴 커쇼의 슬라이더를 따라 효과를 봤고 사이영상을 수상한 댈러스 카이클 휴스턴 애스트로스 의 투구 영상을 보고 컷 패스트볼을 가다듬어 자신의 무기로 만들었다. 농구중계

류현진은 또 같은 동작으로 공을 던지고도 구속을 당겨 늦추는 능력으로 타자를 헷갈리게 한다.

 등판을 앞두고는 상대팀 타자 분석에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류현진이 상승세를 탈수록 다른 팀의 집중 분석 대상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 98승, 미국에서 45승을 거둔 그가 한미 통산 200승 이상을 달성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메뉴를 짜야 한다.

 괴물에서 장인으로 거듭나는 류현진의 새 코스요리가 기다려진다.

   

cen   2011/03/02 01:35 [delete] Reply
감축드립니다. 좋은 글들을 이제 신문에서도 볼 수 있겠네요.

   

jp   2011/03/01 05:50 [delete] Reply
씨엘님...^^ Espoir님, 소마인님 그리고 씽킹님...댓글 감사합니다...
미리 제가 말씀드려도 괜찮을듯해서...블로거 몇몇이 모여...팀블로그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www.laymenblog.com을 자주 방문해주세요...^^

   

시엘   2011/02/28 05:40 [delete] Reply
스티브잡스 따라잡기 +_+ 이거 책으로 출판하셔도 되겠단 생각이 다시 떠오르네요...!
미흡하나마나 jp님의 글읽고 조금이나마 한글로 글쓰는 요령을 익힐려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이래서 기자는 아무나 되는게 아닌가봅니다...ㅋ

   

Espoir   2011/02/28 01:56 [delete] Reply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역시 솜씨가 남 다르시네요~

   

somine   2011/02/28 12:34 [delete] Reply
역시 글쓰씨는 재주가 남다르시더니.. 다 이유가 있으셨네요^^

블러그 통해서 맛난 도시락 많이 전해 주세요^^

   

Thinking   2011/02/27 12:31 [delete] Reply
새로운 일은 항상 기대와 불안함으로 설렘을 줍니다!
기대만큼 이루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셀렘을 느낄 수 있을 때 삶의 희열을 느낌니다. ^_^

좋은 글이 많이 읽혀지지 않아 아쉬워 가슴이 막힌듯한 느낌이었는데...
시원~~~합니다! ^_^

   

파주 그림쟁이   2011/02/27 11:43 [delete] Reply
앞으로 좋은 일 많이 생기시길...글구 늘 유쾌하고 행복한 철부지이시길...^^ 홧팅

   

jp   2011/02/27 09:34 [delete] Reply
까만이불님...^^ 제가 몇줄 답글 남기고싶어서 블로그를 찾았는데 티스토리 아뒤가 있어야지만 가능하더군요...인사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자주 방문하겠습니다!

   

까만이불   2011/02/27 08:49 [delete] Reply
역시! 도시락이 괜히 깊은 맛이 있는게 아니었군요^^ jp님 골수팬이 되어 갑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jp   2011/02/27 05:58 [delete] Reply
감사합니다..선배님...^^

   

junno   2011/02/27 05:13 [delete] Reply
드디어 닻을 올리셨군요. ㅊㅋㅊㅋ

   

      [Save a Comment]

[Prev]
 LA
 SEOUL
   JP
   Mission Viejo, CA,
   United States
   THE GREEN FUSE (RSS 구독)
   LaymenBlog
   x86osx.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