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2.0] 36. 거울속의 남자

July 07,2012                      hit:(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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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의 폭발적 인기, 앱스토어 붐, 충성도 높은 아이튠스 가입자의 찰떡궁합으로 애플 생태계의 완성이 이뤄졌다. 창사이래 최대의 전성 시대를 구가하던 애플. 호사다마라했나. 아이폰 출시 1년이 지나면서 스티브 잡스의 모습은 놀랄 만큼 수척해있었다. 초췌한 그의 얼굴에선 완연한 병세가 느껴졌다. 실리컨 벨리에선 조심스럽게 잡스의 암 재발 소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2005년 스탠포드 졸엽 축사에서 잡스는 자신이 1년전 췌장암 수술을 받았음을 솔직하게 공개했었다. 그는 자신의 암이 췌장암의 1%인 희귀성 “신경내분비암”(Islet Cell Neuroendocrine tumor)이었으며 일반적인 췌장암과 달리 90% 완치율을 보인다며 자신이 암에서 해방됐음을 자신했었다.

사실은 달랐다. 그가 세상을 뜨자마자 출간된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를 보면 2003년 가을 신경내분비암 진단을 받았던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수술을 거부하고 민간요법과 침술에 의존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다 암을 키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9개월이 지나 암세포가 커진 사실을 발견하곤 결국 수술을 받긴했지만 당시 집도한 의사는 미세한 암세포가 간으로 전이됐음을 잡스와 가족에게 알려줬다. 미리 수술을 받았다한들 완치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9개월의 시간을 허비한 것을 놓고 잡스 스스로도 후회를 했다는 전언이다.

그럼에도 잡스는 자신의 상태를 철저히 비밀에 숨기면서 1차 수술에서 회복되자마자 업무에 복귀해 신제품 개발을 위해 더 열심히 자신을 책찔질해왔다. 스탠포드 축사에서처럼 그는 “매일 거울을 보면서 오늘 내가 죽는다면 무얼 해야하나”라는 생각 하나로 살아왔다. 아이폰은 그렇게 태어났다.

안타깝지만 왜 그는 암을 발견하자마 수술을 받지 않고 9개월의 시간을 소모했을까란 질문이 떠오른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전까지 최지근거리에서 그를 지켜봤던 아이작슨의 책도 이점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다만 그의 부인 로렌의 말을 빌려 "그럴수뿐이없는 고집쟁이"란 말만 등장한다. 그는 분명 남다른 사람이었다. 특히 자신이 하고자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은 누구도 따라올수없었다. 되풀이되는 성공신화를 이룩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가장 믿었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초자연적인 의지력으로 병을 이겨내겠다는 자신감도 결코 부자연스러운일은 아니었다.

1차 수술의 결과 암이 전이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잡스는 그래서 언젠가 떠날 세상이라해도 그날까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차례로 진행하고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중압감은 잡스에게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제품 개발에 더 몰두하도록 만드는 동기부여제였다. 자신의 필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시간이 다하는 날까지 무엇을 해야할지 잡스는 시한부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숨쉴틈없이 달려온 잡스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현실을 왜곡시키면서까지 직원들에게 초인간적인 능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재주를 지닌 잡스였지만 자신의 건강상태는 바꿀 수 없었다. 2009년 1월 병세는 악화됐고 중순에 이르러 그는 잠시 병가를 떠난다는 메시지를 날렸다. 자신의 체중이 비정상적으로 감소한 것은 호르몬 불균형 때문이며 휴식을 취하면서 치료를 받고 돌아오겠다는 이메일을 애플 전직원들에게 보냈다.

사실 이때 잡스는 간이식 수술을 받아야하는 위기 상황이었다. 스탠포드 의대에는 10댓명의 최고 의료진으로 구성된 스티브 잡스 전담 팀이 상시 가동중이었지만 이식할 간을 찾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기증자가 나와야했고 기증된 간이 잡스의 혈액과 매치가 되는 것이 또 관건이었다. 게다가 장기이식을 위해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다. 당시 캘리포니아주 거주자인 잡스가 간을 이식받을 차례가 되려면 최소 6월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흘러 2월이되자 주치의는 잡스의 간이 1개월을 못버틸것으로 진단했다. 결국 잡스의 부인은 모든 인맥을 동원해 대안을 강구했다. 마침 멤피스 감리교 대학병원의 간이식 전문의 제임스 이슨박사를 친구를 통해 찾았고 테네시주 장기이식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 빠르게 수슬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특혜시비를 없애기 위해 잡스는 멤피스에 집을 사고 거주지를 옮겼다. 잡스의 수술날짜가 3월초에 잡혔지만 그의 상태는 하루하루 시시각각 악화되고 있었다.

수술날짜가 다가오자 스탠포드에서 멤피스 병원으로의 비밀호송작전이 개시됐다. 잡스는 준비된 자신의 전용기를 타고 맴피스에 도착했고 대기중인 응급차로 곧바로 맴피스 병원에 후송돼 지체없이 수슬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의사들은 잡스의 간을 이식하면서 암이 몸안 곳곳에 퍼져있음을 확인했다.

장기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면역억제제는 필수다. 이식한 장기가 체내조직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복용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잡스의 몸엔 이미 암이 퍼져있어 방사능 치료를 병행해야만 했다. 방사능 치료를 받으면 면역억제제가 기능을 못하고 면역억제제를 섭취하면 암 전이가 급상승하게 된다. 간이식으로 당분간의 생명은 연장됐지만 그의 삶은 이제 마지막을 향하고 있었다.

간이식 수술을 받은 후 회복실에 있던 잡스에게 치명적인 폐렴 증상이 나타났다. 전가족과 최측근들 모여 밤을 세우면서 그의 최후를 대비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떠날 수 없다는 사람처럼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잡스 스스로는 1997년 애플 복귀후 지나친 격무로 인해 암을 얻게됐다는 말을 자주 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의 잘못된 영양섭취가 주 원인것으로 지목됐다. 그는 십대시절부터 채직주의자였다. 워즈니악과 함게 부모님의 차고에서 애플 1 컴퓨터를 개발할 당시 그는 당근과 사과만 먹으면서 살았다. 한창 성장할 나이에 단백질 섭취는 필수다. 그리고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췌장에서 나온다. 그의 췌장은 오래동안 할일을 놓고 제기능을 못하면서 망가져버렸던 것이다.

간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은 잡스는 회복을 위해 무엇보다 고단백질의 영양소가 필요했지만 그는 여전히 채식을 고집했다. 잡스의 부인과 간호사들은 잡스에게 고기를 먹이기 위해 때론 협박도 하면서 어린이 달래듯이 연기를 해야만했다. 수술을 담당했던 이슨 박사와 친분을 쌓기 시작한 잡스는 이슨박사의 말을 듣기 시작하면서 회복에 박차를 가했다.

자신의 병세로 인해 심신이 약해진 잡스였지만 그 와중에도 팀 쿡과 조니 아이브스가 병문안을 찾아와 회사 이야기를 들려주기만 하면 그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눈을 반짝이며 정신을 똑바로 돼찾았다. 또 그들이 찾아온 날에는 먹는것도 가리지 않았다. 애플의 신제품 개발과 경영전략에 대한 집중력이 그의 원기를 회복시켜주는 촉매제였다. 그는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써야할지 집중하고 있었다. 다시 거울을 들여다보는 자신을 보면서 마지막 할일이 하나 더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비밀리에 장기이식 수술을 받고 3 개월동안 맴피스에서 치료를 받은 잡스가 팔로 앨토의 집으로 돌아오던 날 그는 어느때보다 들떠있었다. 비행기가 도착하자 제일 먼저 팀 쿡과 죠니 아이브 그리고 필 쉴러 등 잡스의 최측근 세사람이 기내로 들어와 그의 컴백을 환영했다. 잡스의 부인은 모든이들에게 애플 주스를 나눠주면서 축배를 들었다. 아이브에게 눈을 돌린 잡스는 올해는 반드시 “신제품을 완료시키자”고 다짐했다.

그는 병상에서도 새로운 신제품을 생각하고 있었다. 누구도 생각지못한 완벽하고 혁신적인 “신제품”이어야했다. 자신의 지문이 묻은 마지막 작품에 대한 고민이었다. 아이폰을 통해 손가락 제스츄어 입력방식이 저변화되면서 제품의 성숙도가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그는 평생 꿈꿔오던 전혀 새로운 신제품 출시의 타이밍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생각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내에서 잠시 눈을 감은 그는 30년전 워즈니악과 꿈꾼 세상을 떠올렸다. “전 세계 가정에 컴퓨터가 보급되는 세상.” 모두가 비웃었던 꿈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꿈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고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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