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부활...그 뒷 얘기!!

July 11,2009                      hit:(4118)

최근들어 실리컨벨리의 파워블로거인 Daneil Eran Dilger란 사람의 글에 빠져들었습니다. www.roughlydrafted.com 이란 사이트를 운영하는 Dilger는 애플 관련한 이야기와 뒷얘기만 파고드는 글쟁이입니다...ㅋㅋ 아! 이 사람의 글이 appleinsider.com에도 자주 올라옵니다. 지난번 "플러그인 전쟁...진행형...!!"도 이 사람것을 번역 정리한것이었구요...

이 사이트의 "History" 이야기 페이지를 보면...많은 글이 나옵니다. 그중 먼저 관심을 끌었던게 "애플 왜 실패했나" "인공호흡기에 의존했던 애플" "애플의 반격" 이란 시리즈가 있습니다. 애플의 지난 역사가 생생하게 정리돼있다는...그래서 이 밤에 다시 번역질이나 해보렵니다. 나중에 시간나는대로 계속 이어볼랍니다...오늘은 "애플의 반격"을 먼저 정리해보죠...

Why Apple Bounced Back

애플은 컴퓨터 업계의 총아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기업으로 90년대를 보내야했다. 스티브 잡스에서 존 스컬리, 그리고 또 질 아멜리오로 이어지면서 애플은 창립 이념을 외면하고 HP 그리고 Dell의 마케팅 방법을 답습했다. 애플이 애플다움을 버리고 다른 피씨회사들의 실패한 시장싸움에 뛰어든 순간 패배는 자명한 것이었다.

잡스가 복귀하고 애플은 뼈를 깍는 구조조정에 몰입했다. 다시 애플스러움으로 복귀하려는 시도가 진행됐다. 하지만 돈벌이는 요원한 과제였다. 문제는 소프트웨어. 애플 컴퓨터를 위한 "킬러어플"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90년대 초 어도비 포토샵과 일러스트 때문에 명맥을 이어갔던 애플은 이제 파워피씨에 의존한 시스템 갖고는 다른 하드웨어를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또 어도비는 크로스 플랫폼을 선언하고 맥 뿐만아니라 윈도우스도 지원하고 있었다. 맥이 살길은 더욱 좁아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애플은 우연한 횡재를 하게됐다.
플래쉬로 더 잘알려진 마크로미디어는 자사에서 개발하던 소프트웨어 사업을 분할 매각 계획을 세웠다. 당시 어도비 프리미어 개발자였던 랜디 유빌리오스는 마크로미디어로 회사를 옮기고 프리미어에 상응하는 프로그램 개발을 지휘했다. KeyGrip이 바로 "프리미어 킬러"로 개발되던 중이었다. 하지만 마크로미디어는 무슨 이유에선지 어도비와의 정면대결을 피하고 웹 비디오 개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 뒤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있었다. 애플의 퀵타임을 죽이려고 마크로미디어와 손잡고 플래쉬를 밀어붙이려 했던 것이다. 마크로미디어는 개발중이던 KeyGrip 프로젝트를 매물로 내놓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98년 애플은 휴지통에 처박힐 운명의 KeyGrip 프로젝트를 큰 뜻없이 인수했다. 너무 싸기도 했지만 그냥 아깝다는 생각에서 사들인 것이 이유였다. 당시 애플은 이 프로젝트를 누군가에 맡겨 완성시켜보려했지만 나서는 회사도 없었다. 할수없이 자체해결할 수 밖에! 결국 다음해 애플은 KeyGrip을 Final Cut Pro란 이름으로 출시했다. 파컷 프로는 이렇게 태어난 것이다.

Final Cut Pro의 급부상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애플에서 일어났다. 파컷 프로가 영상 업계의 총아로 떠오른 것이다. 당시 데스크탑에서의 비디오 편집작업은 미미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다. 어도비도 프리미어를 오히려 그래픽 디자인과 프린트 프로덕션에 맞춘 프로그램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었고 프리미어 역시 프로그램으로서 크게 히트친 작품도 아니었다.

디지털 비디오 편집 장비의 최강자는 아비드였다. 아비드 역시 애플2로 시작한 프로그램이었지만 웍스테이션급으로 사양을 올리고 윈도우 기반으로 필름업계를 잠식하고 있었다. 이에 비하면 파컷은 아비드의 막내 동생쯤으로 치부될 정도의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파컷은 퀵타임을 활용한 손쉬운 비디오 편집 작업으로 전문가들을 사로잡았다. 크고 작은 스튜디오들이 파컷의 가능성을 보고 비싼 아비드를 사용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판단을 하게됐다. 당시 스튜디오는 아비드를 소유한게 아니라 작업이 있을때마다 아비드 스튜디오를 고가에 빌려서 작업하는게 통상적이었다. 하지만 저렴한 맥을 이용해 단순 포스트 프로덕션에서 파컷은 그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툴로 등장한 것이다.

파컷이 이 처럼 작은 규모의 영화사나 영상 편집 전문가들에게 인기를 끌게되면서 그보다 더 큰 작업을 요구하는 일에까지 사용될 수 있도록 개발이 이어졌다. 파컷은 퀵타임의 유용성을 극대화시켜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애플은 그렇게 찾아해메던 맥 플랫폼의 "킬러 어플"을 갖게된 것이다. 파컷을 사용하려면 맥을 사용해야했고 맥은 전자출판시장에서의 추락에서 디지털 영화 편집시장으로의 성공적인 진입을 맛보면서 이전과 같은 애플의 명성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애플 소프트웨어의 홍수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애플은 그동안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하드웨어만 갖고는 안된다는 생각을 뒤늦게 알아차린 애플은 파컷이 가져다준 기회를 이용해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개발사의 인수합병과 프로그램 구매 등 공격적인 작전을 시도했다.

2000년 애플은 DVDirector의 Astarte GmBH를 인수하고 개발팀 전원을 애플 개발자로 받아들여 그 다음해 DVD Studio Pro를 출시했다. 파컷과 연동시킨 이 프로그램은 필름 업계에서 디비디 제작에 필수어플로 자리잡았다. 또 애플은 일반 컴유저를 위한 iMovie를 선보였고 iTunes와 iDVD를 2001년에 iPhoto를 2002년에 연이어 출시했으며 이 소프트웨어들은 맥에 탑재되는 프리웨어로 재포장됐다.

갑자기 소비자들은 맥을 사야하는 이유가 생겼다. 피씨는 구매하면 소프트웨어에 별도 돈을 들여야한다. 맥은 피씨에 비해 비쌌지만 따라오는 공짜 소프트웨어가 있었다. 미국 소비자들은 더이상 맥이 비싸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애플은 일반유저를 위해 프리웨어로 제공되는 소프트웨어와 전문가 및 프로슈머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스마트하게 분리했으며 적절한 가격정책을 이용해 하드웨어는 비싸도 한번사면 오래쓰고 양질의 소프트웨어가 풍부하다는 인식을 퍼트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2002년 애플은 영상편집 전문가들이 이용해온 Shake와 독일의 뮤직스튜디오 전문 소프웨어사인 Emagic을 인수했다. 애플은 이때 Shake와 Emagic의 윈도우 버젼을 과감하게 던져버리는 것으로 전문가들을 놀라게했다.

2003년 애플은 iLife 패키지와 Keynote, 그리고 Shake를 응용한 전문가용 파컷프로버젼인 Express를 출시했다 이어 Grageband, Logic Express, 그리고 Motion 등을 내놓았다. 2년후엔 Page와 Keynote를 묶어 iWork을 발표하고 Aperture, iWeb등을 내놓았다.

부가가치를 높여주는 소프트웨어

소프트웨어는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다. 하지만 애플의 맥을 팔리게 해주는 촉매다. 오래전부터 맥은 피씨시장을 뺏을 필요가 없는 회사였다. 피씨와 맥은 엄연히 다른 기기다. 맥은 자신의 시장을 확장하는게 필요한것을 알았고 이를 위해선 맥에서 돌아가는 멋진 어플들이 있어야했다는 진실을 고생끝에 배운것이다.

애플의 30인치 시네마 디스플레이는 누구나 갖고싶은 것이지만 모두가 살수있는 모니터는 아니다. 하지만 애플이 제공하는 전문가용 프로그램을 쓰는 회사나 전문가 그리고 집에서 일하는 프로슈머는 이 비싼 시네마 모니터를 사야만했다.

잡스가 애플에 복귀하고 많은 경영상의 전략적 결정을 내렸지만 파컷의 인수와 이 프로그램의 돌발적인 히트 그리고 이어 봇물터진듯이 출시한 맥 어플의 확보는 다죽어가던 애플이 다시금 컴퓨터 업계의 독보적인 위치로 컴백하도록 만들어준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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