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따라잡기 4…"iPhone Behind Story"

November 23,2009                      hit:(23205)

회원님들 모두 어제 오늘 아이폰 예약하시느라 바쁘셨던거 같습니다…^^
저를 비롯해 일부 해외거주 회원님들께서는 이미 사용중이었지만…한국 출시로 이제x86osx에 더 많은 아이폰 정보가 올라올 것을 기대해봅니다. 해서 여러분들 아이폰 손에 쥐기 전까지 읽을거리 하나 전달하고 싶어졌습니다. 구라쟁이 jp가 다시 아이폰 관련 구라를 풀어보려 합니다…^^

원래 이 사이트를 통해 무한한 도움을 받았습니다. 해킨데탑의 완성과 유지 등등. 친절하신 회원님 고수님 그리고 열혈 해킨 유저분들이 올려주는 주옥같은 정보를 받아 먹고만 살다가…어캐 받은만큼 돌려줄수있는 길이 없을까했습니다. 아는것도 없고 그래서 시작한게 미친맥의 유용한 설치법 번역이었죠. 아마 그게 딱 1년전이었던거 같습니다. EFI Partition 설치법…ㅋㅋ

그렇게 해서 시작된게 애플관련 이야기를 전달하게되고 그러다보니 이 일이 제가 이 사이트에 놀러오는 이유이자 목적이되는 것같습니다. 언제까지 약속드릴 순 없지만 가능한 계속 이어가길 희망합니다.^^

이제 아이폰이 국내 출시되면서 많은 변화를 회원님들도 목도하실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만큼 세상을 바꿀수 있는 "파괴력"을 가진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단순 스마트폰이 아닙니다. 왜 아닌가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또 왜 울나라에 아이폰이 늦게 들어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ㅋ

원문은 2008년 Wired 1월호에 실린 것입니다. http://www.wired.com/gadgets/wireless/magazine/16-02/ff_iphone 플러스 중간중간 제가 Inside Steve's Brain, The Second Comming of Apple 등의 책에서 본…iPhone/iPod 개발 관련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세상을 바꾼 아이폰 비사….

1.

2006년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이날 아침 쿠퍼티노 캠퍼스 애플 이사회 회의장의 주인공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여지없이 뚜껑이 열리고 있었죠. 푹푹 김이 새나오는 정도가 아니라 머리 꼭대기에서 볼케이노가 터져나올듯한 상황이었습니다.

극비의 보안을 유지하면서 열린 프로토타입 아이폰 데모 날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이날의 데모는 대실패였죠. 버벅대는 것은 물론 통화는 되다말고 충전완료가 되기도전에 충전이 중단되고 데이터와 어플리케이션은 따로놀고 디버깅 리스트는 끝이 안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데모 시연이 다 끝나가는 과정에서 잡스의 집요한 손놀림으로 일부 재가동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잡스와 시연 참석자들이 함께 내린 결론은 "완성은 아직 멀었다" 였습니다.

이날의 결과는 사실 잡스의 뚜껑이 열린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상황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리지르고 나발부는 잡스의 폭거보다 더 무서운게 이날의 침묵이었다죠. 한 참석자의 전언이었습니다.

몇달 후 다가올 2007 MacWorld의 대미를 장식할 아이폰이었죠. 이미 레퍼드의 지연 소식을 발표한 잡스가 또 다시 아이폰 마저 연기된다는 발표를 하게되면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은 물론 더 큰 후폭풍이 다가올 태세였습니다. 맥월드 행사 자체가 의미없어지는것은 물론 애플 비판론자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겠죠. 또 주가는…하지만 더 중요한게 AT&T와의 관계였습니다.

잡스는 AT&T(당시는 AT&T를 인수합병하기 전인 Cingular)와 악수하기까지 1년6개월에 걸친 비밀회동을 가졌습니다. 전세계 휴대폰 이통사 업계 1-2위를 다투는 공룡기업과의 마라톤 회의 끝에 잡스는 전대미문의 게약을 성사시켰습니다. AT&T는 5년의 아이폰 독점판매권을 가졌습니다. 그 대신 AT&T는 아이폰이 나오기도전에 애플에 최소10%의 아이폰 판매를 무조건 게런티했고 아이튠 판매 이익의 배분을 약속했죠. 그 뿐만이 아닙니다. AT&T는 잡스에게 거의 전권을 줬다는게 맞습니다. 잡스의 설득으로 AT&T는 당시 업게 최초로 "비쥬얼 보이스 메일"이란 새로운 기능을 추가했고 또 아이폰 개통을 위한 새로운 방식의 인-스토어-사인-업 프로세스를 도입했습니다. 모두 AT&T의 비용이었습니다. 또 아이폰 가입자의 월청구서에서 약 10달러를 애플이 가져가는 것도 허락했습니다. 여기에 애플은 아이폰에 대한 디자인, 제조, 마케팅, 가격 등 모든 권한을 가졌습니다. 삼성 LG 노키아 소니엑릭스 모토롤라 등 세계 유수의 휴대폰 제조사들이 잡스만 바라보고 이럴수가…손가락 빠는 상황이었죠. 상상할 수 없는 계약내용이었습니다.

잠스에겐 뭐 어려운일이 아니었을수도 있습니다. 아이튠 디지털 음원 판매 계약당시를 회상하면요. 하나의 디지털 음원을 계약하기 위해 최소 5자회담과 서명이 필요합니다. 아티스트, 작곡/작사자, 매니저, 음반제작사, 변호사 등등. 잡스는 누굴 설득하는데 지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처럼 5자회담을 성사시키는것만도 어려운데 모두를 설득해 아이튠의 컨텐츠를 살찌운 비결은 배워서 되는게 아니죠. 타고난 것입니다.

굴지의 이통사 AT&T가 잡스를 만만하게 여기다 된통당했다는 말도 있지만 AT&T 역시 경쟁사 버라이존의 기를 누르기위해 "킬러 폰"이 필요했습니다. 버라이존은 잡스를 아예 우습게 보고 기어들어오라 했다죠. 하지만 AT&T 는 옳은 결단을 내렸습니다. 너무 많이 내줘서 이통사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지만 아이폰 덕에 시장 점유율과 주가 상승 두마리토끼를 잡는데 성공했으니까요. 그런데 잡스가 아이폰 출시와 관련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면…뚜껑 열릴만 하겠죠!

다시 그 2006년 가을날로 돌아가보면 이후 3개월간 애플사의 아이폰 개발자 200여명은 지옥행 단체열차를 타야만했습니다. 기관사는 잡스였구요. 계속되는 잡스의 욕지거리에 신경쓸틈도 없었다죠. 오로지 개발성공을 위해 연일 밤을 지새웠죠. 잡스만 뚜껑 열린게 아니었습니다. 프로덕트 매니저이자 여성 엔지니어였던 간부가 핏대가 올라 자기 오피스 방문을 하도 세게 닫아 문고리가 박살나고 방에 갇히는 신세가 됐습니다. 더 재밌는건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동료 엔지니어들이 알루미늄 야구배트를 들고와 문짝을 개박살냈던 일화도 있습니다. ㅋㅋ 사실 뚜껑열린게 중요한게 아니라 아이폰 개발자 모두가 합심하고 긴장해서 개발 성공을 위해 정말 치열하고도 치열한 노력을 벌였던것 입니다. 직원들 뿐만아니라 잡스도 일심동체로 지옥탈출을 해야했으니까요.
2006년 12월이었습니다. 이번엔 잡스와 개발자들이 AT&T CEO 스탠 시그먼과 중역진들이 머물고 있는 라스베가스의 한 호텔방에 도착했습니다. 여늬 대기업 CEO들 처럼 무개잡기로 소문난 시그먼이었죠. 부리부리한 큰 덩치에 무척 고압적으로 생긴사람입니다…ㅋㅋ 이날 호텔방에서 데모를 주도한 잡스는 3개월전과 180도 다른 아이폰을 가져왔습니다. 보기에도 아름다운 스크린 화면의 UI에서부터 파워풀한 웹브라우징이 돌아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시그먼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내가 본 최고의 휴대폰이닷"이라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떨고 간부들은 "회장님, 우리 회장님"을 연호했답니다. ㅋㅋ 아 물론 AT&T와 애플의 어느누구도 이날의 일을 확인해주진 않았습니다. 참여했던 관계자들 사이에서 소소히 흘러나온 이야기이니까요…^^

이후 정확히 6개월뒤 2007년 6월29일. 잡스는 '세상을 또한번 바꿀' 자신의 아이폰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최단시일내 최다판매량 기록은 물론 아이폰은 애플과 AT&T의 효자였습니다. 당시 400달러에 출신된 아이폰은 판매될때마다 개당 80달러를 애플의 금고에 넣어줬고 AT&T는 아이폰 2년약정 가입자당 240달러를 애플 금고에 넣어줬습니다. AT&T는 이때 아이폰 가입자의 40%나 신규가입자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시스템 부하가 걸리기도 했습니다.

더 중요한것은 아이폰이 한해 110억달러에 이르는 미국 휴대폰 업계에 미친 영향입니다. 오랫동안 이통사들은 휴대폰 제조사들을 마치 "음식점 웨이터" 처럼 다뤘습니다. 제조사가 이통사의 망을 접근하도록 허용하는 대신 어떤 폰을 만들어라 가격은 얼마다 어떤 기능을 추가해라 등등 그야말로 "이통사 입맛대로" 시장구조 였습니다.

헌데 아이폰이란 단기필마를 태운 해적선이 이통사 바다의 한 복판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이통사들이 뒤늦게 깨달은 것은 정말 괜찮은 휴대폰이 있다면 그것이 비싸다해도 고객 유치와 수익 증대가 가능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이폰 이후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너두나두 할것없이 소비자가 사랑에 빠질만한 기기개발에 집중하고 잡스따라잡기 계약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증권사 파이퍼 재프레이의 분석가는 "아이폰 하나가 이제것 존재해온 이통사와 휴대폰 제조사의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합니다.

2.

2002년 잡스는 iPod을 소개한 직후 돌연 골때리는 생각을 하나 떠올렸습니다. "스마트폰?"
당시 미국 사람들은 이미 휴대폰을 호주머니속에 넣어두었고 더불어 PDA도 갖고 다니고 MP3 플레이어도 함께 달고다니는 중이었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모든 기기를 하나로 통합하는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의 통합기기를 이용해 이멜도 주고받고 인터넷 기능도 추가될 상황이었습니다. 또 잡스는 이런 통합 기기들이 나오면 당시 인기 상승세를 그리던 아이팟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도 알고 있었죠. 그렇다면 '방어를 위한 공격'이 선택이었고 자신이 그 시장에 뛰어들어야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생각은 맞아 떨어졌지만 극복해야할 장애물이 널부러져있다는 것도 잡스는 간파하고 있었죠. 아이폰 개발에는 우선적으로 애플에서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팟 운영체제로는 네트워크 기능이나 그래픽 기능을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OS X를 간소화한다해도 휴대폰에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2003년이되자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에서의 새로운 미래의 경쟁자들을 줄지어 보고 있었습니다. PDA와 휴대폰을 통합한 Palm Treo와 블랙베리가 히트작으로 판매됐고 Device Convergence(통합기기)가 추세로 나타났습니다. 이제 애플에서도 엔지니어의 눈높이가 달라져야했죠.

잡스는 스마트폰 개발 뿐만아니라 휴대폰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이통사와의 협상이 난제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주도권"이라면 절대 놓치지 않으려는 잡스의 성격상 이통사 넥타이부대가 이래라 저래라하는 꼴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해 여름 잡스는 공개적으로 애플의 휴대폰 개발을 철저히 부인했지만 이미 쿠퍼티노 비밀던젼에서는 개발이 시작됐습니다.

잡스는 이통사를 우회패스하기 위해 모토롤라를 찾아갔죠. 모토롤라의 에드 잰더 CEO는 잡스와 막혁한 사이였고 그가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에 있을때부터 좋은 관게를 가져왔습니다. RAZR란 모델로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는 모토롤라를 설득하면 애플이 직접나서서 이통사를 노크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모토롤라는 RAZR의 인기에 너무나 취해 그 이후를 도모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아이튠스를 이용한 음악 디스트리뷰션이라던가 휴대기기의 스토리지 사이즈라던가 기기명칭을 둘러싸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덧 2004년도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모토롤라와의 인연 때문에 2005년 잡스는 그의 첫 휴대폰인 ROKR를 선뵀습니다. "휴대폰 + 아이팟 셔플"의 통합기기였지만 참패였습니다. 물론 모토롤라를 위한 OEM 기기였기 때문에 애플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습니다. ROKR가 RAZR 후속모델로 양산체제에 들어갔지만 이때 잡스는 스스로 애플 고유의 휴대폰을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2005년 2월 잡스는 Cingular (AT&T)를 찾아가 모토롤라를 배제한 비밀 단독회동을 성사시켰습니다. 스탠 시그먼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잡스는 자신의 아이폰 계획을 명쾌유쾌상쾌하게 설명했고 3가지로 자신의 주장을 요약했습니다.

a. 애플은 휴대폰 시장에서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독창적이고 혁명적인 기기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잡스는 이부분에서 다른 회사들이 앞으로 등장할 애플의 휴대폰을 따라오려면 "수 광년"이 걸릴 것이라 했음) b. 그래서 애플은 독점계약을 원한다. c. 여의치 않다면 애플은 이통사로부터 분당사용요금을 할당받는 방법을 이용해 직접 "하도급 이통사"가 될 계획이 다.

이런 잡스의 자신감 뒤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97년 애플 복귀한 잡스는 업계에 "steved"란 신조어를 만들어냅니다. 6개월이면 파산할 것이라는 애플을 구하기위해 잡스는 "칼바람 쇼"를 행사했습니다. 전임자가 애플의 방만 경영을 30% 줄였다면 잡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70%나 줄여야 생존가능성이 있다고 믿었죠. 직원들 사이에서 "I got stved"라고 말하면 "나 오늘 짤렸어"란 의미였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눈길만 마주치면 짤린다는 소문이 이때부터 돌아다녔죠. 잡스로선 애플을 구하기 위해 어쩔수없는 선택이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지금까지 잡스는 비판론자들에게 "극악무도한 해고잡이"란 별명이 따라다닙니다. 울 나라 같았으면 아마 염산테러 당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ㅋㅋ

그런 칼바람 쇼를 진행하면서도 잡스는 사실 남겨둘 사람은 모두 남겼습니다. 비판론자들은 잡스가 "전임자들이 신뢰한 사람들은 모두 짤랐으며 특히 존 스컬리에 의해 창설된 업계 최초의 PDA Newton 사업부를 해체했다"고 즐겨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애플의 디자인 총책인 조나던 아이브스를 중용했고 Newton 사업본부는 날렸어도 이를 개발한 엔지니어들은 모두 남겼습니다. 터치패드로 첫 출시에는 비틀거렸지만 잡스 복귀시점엔 뉴튼이 브레이크 이븐 포인트를 넘어설 정도로 됀찮은 아이템이었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4종의 맥킨토시에 집중하기위해 Newton 사업을 접었지 그 기술까지 접은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 Newton으로 집적된 터치패드 기술이 아이폰으로 빛을 발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이미 잡스는 2004년 한해동안 애플 아이폰 개발의 초석을 다지도록 엔지니어를 독려해왔고 특히 터치스크린 테크놀러지 분야에서 눈부시 발전을 이뤘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개다가 이때 ARM사의 ARM 11 프로세서가 나와준것은 금상첨화였죠. 배터리 효율성이 가장 중대한 난제였을때 ARM 프로세서는 프로세서 파워와 저전력소비가 관건인 아이폰 개발에 탄탄대로를 열어준 사건이었습니다.
3.

Cingular의 시그먼 CEO와 그 식솔들은 아이튠스의 디지털 음원 유통을 놓고 메이저 음반사들이 잡스에 설득당한것처럼 잡스와의 미팅에 녹아들었습니다. 아이폰이란 실체도 없는 게획만 있는 스마트폰을 놓고 빠져들었으니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설득법"이 미국 대학교의 강좌로 등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당시 휴대폰 업계에서는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경쟁에 의해 수익구조는 더욱 압박받고 있었구요. AT&T와 합병을 성사시킨 Cingular는 업계 2위로 가뿐히 솟아오르면서 1위인 버라이존을 제칠 무기가 절실했습니다. 또 잡스는 버라이존이란 경쟁사를 적절히 활용하는 작전을 펼였습니다. Cingular쪽에 잡스가 버라이존을 만난다는 소문이 흘러들어게했죠. Dejavu Again! 전세계 최대의 미디어 그룹 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즈너 회장을 가볍게 무너트린 잡스였습니다. 픽사의 "토이스토리가"가 히트치자 잡스는 아이스너와의 담판을 짓고 모든 제작 지휘권을 넘겨받아옵니다. 할리웃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이미 벌어졌었죠. 이제 AT&T 차례였습니다.

시그먼은 휴대폰 사용자들이 인터넷 사용을 가능케해주는 Wifi와 MP3 기능이 반듯이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다시말해 DATA 서비스의 창출이고 이는 곧 휴대폰 업계의 새로운 수익원이란 생각을 한것입니다. 허접스런 핸드폰을 공짜로 주면서 고객을 유치하는 방법은 이미 구시대 유물이란 결론을 내린것이죠. 하지만 와이어리스 인터넷 접근은 새롤운 시장의 가능성을 이통사에게 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시그먼은 다른 이통사가 갖지 못하는 스마트폰을 반듯이 반듯이 가져야만 새로운 시장에서의 승부수를 띄울수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이를 위해 누굴 믿어야할까요. 결론은 스티브 잡스였습니다. 이미 아이팟의 섹스어필로 MP3 시장을 장악하는 애플이 그 뒤를 버텨줬고 시그먼은 자사에 아이팟 같은 섹스어필 스마트폰이 있어야한다는 것을 결정한 것입니다. 이미 잡스의 제안을 우습게 차버린 버라이존이 미처 내다보지 못한 가능성을 시그먼은 본 것입니다.

시그먼은 옳았고 곧바로 잡스와의 계약작업을 진행시켰습니다. 불과 1년도 안걸릴 정도로 스피드가 붙었습니다. 시그먼과 식솔들은 당시 잡스에게 너무나 많은 양보를 하는 자신들을 보게됩니다. AT&T가 아이폰을 위한 파이프라인 밖에 되지 못한다면이란 생각을 한것이죠.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아이폰이 고객들로 하여금 데이터 통신의 쓰나미를 가져온다면 컨텐츠 계약으로 잃은 것을 만회하고도 남을 것이다."

2005년 이맘때쯤 추수감사절이었습니다. 잡스는 AT&T와의 계약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죠. 잡스는 비밀 던젼의 아이폰 엔지니어들을 모아놓고 사명감을 불어넣습니다. 아이폰에 들어갈 전혀 새로운 OS는 OS X의 10분의 1의 사이즈여야했고 최신 기술을 접목시켜여야한다는 점을 주지시켰습니다. 자신이 잉태한 아이폰의 탄생을 위해 매킨토시 개발을 독려하던 20대 청년의 잡스가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파산의 위기에 직면한 추락하는 애플을 구했고 새로운 매킨토시로 회사를 정비했죠. OS X로 애플을 재건하고 아이튠스와 아이팟으로 월가를 놀라게한 잡스였습니다. 이제 아이폰으로 다시한번 세상을 놀라게할 자신감에 잡스는 하루하루가 모자를 정도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초 아이팟의 다이얼 패드 기능을 이용한 아이폰도 생각했었고 리눅스만을 이용한 임베디드 시스템도 강구했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 서핑에서 너무나 약하다는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2006년이 되자 애플 엔지니어들은 OS X 레퍼드의 완성을 눈앞에 뒀습니다. 잡스는 이때 레퍼드를 이용한 아이폰 오에스를 강구하라고 지시합니다. 이용한다는것 보다 사실 Rewriting 이 더 맞는 말이죠. 하지만 레퍼드와의 호환성을 가지는 베이비 레퍼드가 아이폰에 들어가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애플에서의 개발과정은 여타회사의 그것과 너무나 다릅니다. 하드웨어 엔지니어가 구조설계를 먼저하고 소프트웨어가 따라붙고 그 다음 디자이너들이 제품의 옷을 디자인하죠. 애플에선 이 세분야의 엔지니어가 모두 비밀던젼에서 상주하면서 매일매일 회의 를 합니다. 하드에어디자이너들이 계획을 얘기하면 케이스 디자이너들과 소프트웨어 디자이너들이 딴지를 겁니다. 그런식입니다. 이 3자 회의는 잡스의 주관으로 열립니다. 서로가 서로를 논리적으로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공통분모를 찾아내죠. 그렇게 해서 완벽한 하나의 제품이 3 부서의 통합진행으로 이뤄집니다. 시간은 걸릴지언정 결말은 깔끔하죠. 나중에가서 디자인변경하고 난리부르스 떠는일이 없는것입니다. 바로 잡스가 만들어낸 창조적 팀플레이입니다. 한 제품에 대해 3 부서가 통합 책임을 가진다는것과 같습니다. 이때 잡스는 가장 훌륭한 소비자로 변신합니다. 엔지니어가 예상못하는 사용자 입장에서의 input과 비판이 잡스의 입에서 나옵니다. 잡스가 엔지니어가 아니라고해서 엔지니어에들에 의해 따당하는 일이 없었던 이유가 바로 이때문입니다. 이상한 소리같지마 듣다보면 말이되는…Realtiy Distortion Field All Over Again!

애플의 이런 창조주의 때문에 애플에서 전혀 건들여보지 못했던 휴대폰의 안테나 디자인이라던가 RF 레디에이션 측정 장비, 네트웍 서버 시물레이션 장비 등 수천만달러를 들여 구입했습니다. (이런거 삼성이나 엘쥐가 전문이겠죠) 하지만 어려운 개발 장애물을 하나하나 넘어갔습니다. 비밀 던젼에는 휴대폰 디자인을 이해 모형 브레인이 창조됐고 터치스크린 창조를 위한 아이폰 스크린 엔지니어 그룹이 초청됐습니다. 강화플래스틱이 아니라 스크래치가 없는 유리여야한다는 결론에 도달하했습니다.

여러분께서 예약하신 아이폰 개발을 위해 애플은 단 1년 사이 무려 1억5천만달러를 투입했습니다.

4.

애플 내부에서도 아이폰 개발은 철저한 1급 비밀 사항이었습니다. 내부적으로 아이폰 프로젝트는 "P2"라고 불렸습니다. Purple 2의 약자인데 원래 아이팟 폰의 개발명칭이 Purple 1, P1이었죠. 그래서 P2로 불렸습니다. 아이폰 개발팀의 쿠퍼티노 비밀던젼도 한곳이 아니라 여러곳에 분산시켰습니다. 좀더 보안강화를 위한 조치였죠. 애플의 관계자가 AT&T를 방문할 경우 그들은 Infineon이란 회사명을 이용했습니다. 인피니온은 애플에 휴대폰 트랜스미터를 공급하는 회사였습니다. 통합 관리를 하면서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팀이 이번 프로젝트만큼은 다른 빌딩을 사용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하드웨어 개발자들은 어떨땐 가짜 소프트웨어를 받아서 이식하는 작업을 했을 정도였답니다. 잡스가 2007년 6월 아이폰을 발표할때까지 2만 직원이 넘는 애플에서 아이폰을 눈으로 본 간부는 단 30명 뿐이었습니다.

아이폰 출시 때 정말 우스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자태가 너무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워서 사용자들은 초기 모델의 불완전성을 완전히 용서하거나 잊어먹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처음 아이폰 가격은 599달러. 말이안되는 가격이었죠. 잡스도 AT&T도 사실 성공의 가능성을 쉽게 점치지 못했기 때문에 초기 생산량을 너무 적게 잡았습니다. 그래서 가격이 높아졌죠. 하지만 순식간에 수백만댓수가 나가는 것을 본 잡스는 "박리다매" 전략수정을 급하게 합니다. 2달만에 200달러를 내리고 얼리어댑터들에게 사과공문까지 발표하고 100달러 리베이트를 해줬죠. 당시엔 AT&T 의 EDGE 망으로 아이폰이 사용됐습니다. 느려터져서 이멜도 제대로 주고받지 못했죠. 브라우져는 java와 flash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테크월드 전문가들의 비판이 난무했지만 사용자들의 반응은 "그래도 좋다"였습니다. 또 앱 스토어의 눈부신 성공이 길을 열었습니다. 소비자들에겐 지금까지 사용한 가장 편리하고 쉬운 PC가 바로 아이폰이었습니다.

이미 아이폰은 휴대폰 이통사의 전통적 주도권을 산산히 부숴버렸습니다. 동시에 소비자, 개발자, 제조사들에게 이제것 휴대폰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신세계를 보여주면서 최대의 선물을 안겨줬습니다. 아이폰의 시장점유율은 전대미문의 스피드로 확산일로에 있습니다. 앱스토어가 여기에 포함되고요.

휴대폰 기기 제조업체들은 지금까지 누려보지 못했던 새로운 지위를 애플과 더불어 누리고 있습니다. 이통사가 따라붙어 제발 좋은 제품 개발해달라고 조르는 입장이니까요. 갑자스런 주객전도에 제조사들의 입이 다물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정체된 피씨 환경에서 탈피해 아이폰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또 누군가의 장막에 갇혀 조정받을 필요없이 소비자와의 직거래가 열렸죠. T mobile 과 Sprint 등이 구글의 안드로이폰과 계약을 서둘렀습니다. 오픈 소스 기반인 안드로이드 역시 업계 새로운 바람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제왕적 자리에 갇혀 앞을 보지 못했더 버라이존 마저 모토롤라에 구애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통사의 넥트웍 망이 이제 데이터 통신 사업의 기반이 되고 있는것입니다. AT&T 역시 아이폰 사용자의 확산에 맞춰 망사업을 재정비 확대하고 있습니다. 그 스피드가 아이폰 증가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와이어리스 시장에서의 인터넷 기능성과 유연성이 확장일로에 있는게 바로 아이폰이 가져온 현실입니다.

이통사들이 아이폰으로 인해 자신들의 파워가 소비자와 개발자 그리고 스마트폰 제조사에 넘어갔다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이 데이터 통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망사업자가 잃을게 없습니다. 소비자가 아이폰과의 시간을 더많이 보낼수록 망사업자의 수익도 올라가니까요.

AT&T의 폴 로스 마케팅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통사가 아이폰 사용과 서비스 때문에 폭발직전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시장을 다르게 생각하고 접근하고 있다. 이통사 업계 모든 사람들이 오랫동안 우려하고 걱정했던 부분이 사실 이통사에게 득이되는 현상이란것을 이해하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했던것은 바로 스티브 잡스가 iPhone을 통해 보여준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comment : (3)

nasfactory   2010/11/28 01:36 [delete] Reply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감사합니다.

   

WSG   2010/11/26 08:25 [delete] Reply
정말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마음껏 웃으면서, 좋은 글귀 읽게 되서 좋았습니다.

   

Funguypph   2010/11/26 06:49 [delete] Reply
너무 유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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