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따라잡기 21...존 스컬리 인터뷰

October 17,2010                      hit:(7936)

불운의 스타라고 해야하나요…존 스컬리하면 스티브 잡스를 쫓아낸 애플 대표이사 또 컴퓨터 여명의 시기 10년을 앞서간 매킨토시라는 최고의 보물을 갖고도 애플을 거의 망하게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왔습니다. 사실 70년대 후반 펩시콜라 CEO였을 때는 미국을 대표하는 40대 재계 리더였죠. 잡스가 그를 애플로 모시기 위해 "평생 설탕물이나 팔래, 나랑 같이 세상을 바꿀래"라고 했던 말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제가 팔육이 사이트에 "…잡스 따라잡기"를 시작 하면서 가장 많이 인용하고 번역했던 "Inside Steve's Brain"의 저자 렌더 커니(Leander Kahney)가 이번에 기자로서 큰 건을 건졌습니다. "Odyssey: Pepsi To Apple"(1987)이란 자서전 이후 오랫동안 침묵을 지켜오던 존 스컬리가 수년에 걸친 카니의 인터뷰 구애작전에 넘어갔습니다. 물론 스컬리가 간혹 몇마디 던지는 일은 있었지만 이처럼 심도있게 기자와의 인터뷰를 나눈 적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이 시간을 맞추지 못해 이멜로 서신을 주고 받다가 마지막 인터뷰는 네브라스카 오마하 공항에서 1시간 동안 이뤄졌답니다. 커니의 집요한 저널리스트 정신도 찬사 받을 만합니다. Cult of Mac 사이트 운영자인 커니가 엊그제 스컬리와의 인터뷰 전문을 공개했습니다. 물론 전세계 뉴스로 알려졌지요.

요즘처럼 애플에 대한 관심이 폭증한적이 또 언제였는지…시기적으로 아주 적절한 이야기로 보입니다. 애플의 300달러 줏가 시대가 열렸고, 싯가총액 전세계 최대 회사 등극을 눈앞에 두고있습니다. 또 90년대 초 이래 처음으로 PC시장 점유율 10%를 재돌파했 답니다. 때문에 블룸버그 인터넷 TV에선 1시간짜리 "Game Changer"란 스티브 잡스 특집 다큐멘타리를 또 방송했다죠. ( http://www.bloomberg.com/video/63722844/ ) 질풍노도와 같은 애플입니다!

오늘은 랜더 커니가 작성한 스컬리와의 인터뷰 전문을 완역해 지난날 잡스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으로부터 숨김없는 잡스의 모습과 머릿속을 훔쳐보도록 해보죠. 또 잡스가 어떤 노력으로 오늘의 애플을 만들었는지가 잘 담겨있습니다. 또 애플서 추방되기전 잡스는 지금까지 "엉덩이 뿔만난 망나니"로 알려졌지만 스컬리의 이야기속에서 진정한 제품 개발자의 모습이 녹아있습니다. 주의깊게 봐야할 대목같았습니다. 현재까지 잡스관련 책은 많이 있었지만 공식적인 자서전은 지금 조용히 준비되는 중인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중에 스컬리와의 관계가 어떻게 잡스의 입을 통해 나올기 궁금해지는 군요.^^

아…그전에 한가지 주목해야할 사실! 스컬리가 지금도 주장하는 자신의 업적 둘이 있습니다. 뉴턴 개발과 ARM Holdings의 설립. 뉴턴 개발 기술은 결국 아이폰의 기초를 만들어줬고 ARM Holdings는 애플과 Acorn Computer, VLSI (Advanced RISC Machines) 등 3 회사의 조인트벤처였습니다. 이 회사가 지금 아이폰/아이패드 등 스마트폰 CPU를 주도하는 영국의 ARM사 입니다. 물론 애플은 97년 잡스가 복귀했을때 재정난 극복을 위해 ARM Holdings의 지분을 모두 처분해 팔억달러의 자금을 마련했었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오늘의 애플로 거듭태어난 것이죠. 아이러니한 대목입니다. 만약 애플이 ARM 지분을 그대로 갖고 있었더라면…^^

내용이 좀 깁니다. 천천히 즐기세요…^^

다음은 렌더 커니의 존 스컬리 인터뷰 전문 입니다:

"스컬리와의 인터뷰를 성사시키기 위해선 애플에서의 실패 이야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과 80년대 초 잡스의 속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한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다는 진정성을 확인시켜줘야했다. 긴글이지만 인터뷰 전문을 공개해 스티브 잡스의 내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스컬리는 내가 만난 CEO 중 가장 솔직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실수와 패착 그리고 컴퓨터 문외한임을 깨끗하게 인정했다. 굴지의 대기업 CEO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드러낸 것은 정말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렌더 커니 (이하 LK): "스티브 잡스의 방법론"에 대해 자주 언급해왔다. 잡스의 방법론이란 무엇인가.

존 스컬리 (이하 JS): 근본적으로 접근해보자. 내가 처음 잡스를 만난것은 사반세기전의 일이었지만 그때부터 잡스는 자신만의 상품개발전략을 제1의 원칙으로 삼고 있었고 이를 내가 "잡스의 방법론"이라 칭했다.

잡스는 "아름다운 상품"에 흠뻑 빠져있었다. 특히 온갖 종류의 하드웨어에 대한 그의 열정은 정말 대단했다. 한번은 그가 우리집을 방문했다. 나 역시 산업디자인 학도 출신이었기에 (주: 스컬리는 브라운대 건축디자인 학사/ 와튼스쿨 MBA를 졸업했음) 좀 독특한 집을 갖고 있었다. 잡스는 한눈에 알아챘다. 문짝의 경첩과 손잡이만 보고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의 관계가 발전한 것도 사실 컴퓨터와 상관없이 이런 산업 디자인에 대한 공통의 관심사가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컴퓨터에 대해 나는 당시의 세상 사람들처럼 뭐가 몬지 하나도 몰랐다. PC 혁명이 시작되던 때였지만 우리는 멋진 제품 디자인에 빠졌고 잡스는 특히 사용자들의 경험을 염두한 디자인에 심취해 있었다. 그는 항상 사용자들이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에 몰입했었다. 제품출시전 통상적인 소비자 여론조사가 진행됐고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 것으로 마케팅이 시작됐지만 잡스는 결단코 이런 절차를 따라할 생각이 없었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픽 기반의 컴퓨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래픽 기반 컴퓨터가 어캐 만들어졌으면 좋겠는지를 물어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누구도 본적 없는 제품이란 말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소형 전자계산기를 보여주면서 컴퓨터를 생각해보라는 것과 같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사용자 경험치는 잡스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개념이었고 제품을 바라보는 사용자들의 느낌에서 가장 중요한 매개체가 디자인이란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가 컴퓨터 문외한인 나를 대표로 앉힌것도 컴퓨터가 결국에는 소비자 가전으로 자리매김 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80년대를 되돌아보면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PC란 것을 대형 컴퓨터의 작은 버젼으로 생각했고 IBM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텔레비젼에서 할 수 있는 비디오 게임기를 봤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컴퓨터를 게임머신으로 여겼지만 잡스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우선 컴퓨터가 세상을 바꿀것이란 생각을 했고 "생각의 견인차" (the bicycle of the mind")가 될 것을 확고하게 믿었다. 사람들이 이전엔 결코 생각지 못했던 상상의 날개와 꿈을 실현시켜 줄 기기로 봤지 게임머신이나 조그만 버젼의 대형 컴퓨터를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비젼을 갖고있으면서도 조그만 디테일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 그럼 사람이었다. 모든 절차와 진행이 방법대로 이뤄져야했고 모든 디테일에 주의깊은…이른바 완벽주의자였다.

Apple II를 예로들면 당시 최초의 플라스틱 케이스를 입힌 PC였다. ABS Plastic이란 것인데 키보드까지 함께 붙어있었다. 오늘날엔 아무것도 아닌 것지만 1977년 시점에서 잡스의 디자인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고 그때부터 잡스의 방법론이 출발한 것이다. 그렇게해서 매킨토시가 가능했고 NeXT컴퓨터, iMac, iPod, iPhone으로 이어진 것이다.

잡스의 방법론이 남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일을 진행하면서 해야할 일에 의해 순서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해선 안되는 것들에 의해 결정나는 것이다. 그는 순수 미니멀리스트다.


한번은 잡스의 집을 방문했다. 그 큰 집에 가구라곤 아인슈타인 사진 포스터 하나에 티파니 램프, 그리고 의자 하나, 침대 하나 뿐이었다. 이거저거 집에 들여 놓는게 싫다는 그였지만 하나라도 고를때 만큼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애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제품 디자인이란 적어도 테크놀러지 업계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것에 비교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보석을 갖고 제품을 만드는 장인정신과 비교돼야한다고 믿었다. 사용자 경험치를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당시 우리집 문짝에 사용된 경첩과 손잡이들을 예로들자면 그것들은 모두 순동으로 주문 제작된 손으로 깎고 다듬어진 유일무이한 디자인이었다. 지금껏 잡스가 손댄 모든 제품에서 나는 똑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

처음으로 매킨토시를 봤을때 한창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Bread Board라고 불리는 부품들 뿐이 없었다. 완성단계가 아니었기에 그런 부품들은 중요한게 아니었지만 잡스는 그때도 최고 부품이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가장 스마트한 사람들과 일한다는 의식을 확산시켰다. 카리스마와 매력 넘치는 그의 모습은 일하는 사람들 모두로부터 "열정"을 뽑아냈다. 사람들은 제품이 완성되기도 전에 잡스의 비젼에 확신을 갖고 있었다.

매킨토시 개발팀은 나중에 1백명까지 확대 됐지만 처음엔 스무댓명이었다. 평균나이 22세. 이들은 단 한번도 상품을 만들어 본적없었지만 잡스와 그의 비젼을 신뢰했다. 바로 이 때문에 잡스는 여러가지 믿기지 못할 일들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다.

"세상을 바꾸자"는 그의 레토릭을 설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제품의 완성 가도에 필요한 세세한 디테일을 주문하고 있었다. 완성품의 케이스 디자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디자인은 말할것도 없고 결국 어플리케이션 디자인과 주변기기와의 연결 디자인까지 지도하고 있었다.

각각의 분야별로 그는 최고로 스마트한 사람들만 불러들였고 사람을 뽑을 때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직접 결정을 내렸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잡스는 절대 대기업 조직을 좋아하지 않았다. 관료적이고 배타적이며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잡스는 이들을 "멍청이"(bozo)라고 공개적으로 불렀다. 자신의 회사에서는 절대 허락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매킨토시팀이 결국 1백명으로 늘어났을때 잡스는 절대 1백명을 넘어선 안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1백명이상의 조직이 효율적이일 수 없다는 지론에서였다. 따라서 새로운 사람이 추가로 필요하면 그만큼 회사를 나가야할 사람들이 생겨났다. "1백명이 넘으면 사람이름도 외우기 어렵고 결국 잘아는 사람들만 만나게 되고 내가 운영하기 어려운 조직이 되버린다. 하지만 나는 모든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다." 잡스는 절대로 자기가 관장하는 조직이 1백명이상 되는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LK: 지금 애플은 수만명 직원들을 거느리고 있다. 이점은 어캐보는가. 또 그가 이렇게 비대해진 조직을 어떻게 관리한다고 생각하는가.

JS: 잡스는 "조직이 커질 순 있어도 맥팀은 안된다"라고 했었다. "매킨토시 디비젼은 프로덕트 개발팀의 출발선이고 나머지 애플의 판매, 운영, 법률팀은 별도 중앙 관리적 조직이여야한다"고 했었다. 당시 테크놀러지 제조업계가 그랬지만 제조라인에 많은 인력이 투입된다해도 실제 훌룡한 제품을 만드는데 많은 인원은 필요없었다. 매킨토시 운영체제는 수명의, 정말 작은 팀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개발중이었다. 마치 화가의 아틀리에 같았다. 잡스는 화가들이 작업하는 스튜디오를 배회하면서 독려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아티스트를 이끌었다. 그는 자신의 스튜디오의 매스터였다.

엔지니어들이 밤 12시, 새벽 1시까지 일하는 모습을 수도없이 봤다. 그들은 날밤을 새우고 점심때나 돼야 다시 나타났다. 한 엔지니어가 잡스에게 자신이 몇날며칠을 걸려 만든 소프트웨어 코드를 자신있게 보여주지만 잡스는 쳐다보고 읽어보고 버리라고 한다. "더 해야해"란 단 한마디로 끝난다. 그는 직원들에게 기대치를 높이도록 독려하고 결과는 항상 직원들 스스로의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땡기는 매력과 카리스마적 리더쉽 그리고 직원들에게 뭔가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전달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보자면 잡스는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직원들을 혹사시키면서 그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박대하는 방법을 썼다.

LK: 자신이 무슨일을 어떤 방법으로 하는지에 대해 잡스도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았나? 못된 망나니 짓거리가 아니라 매킨토시라는 목적달성을 위해 주의깊게 의도된 전략 아닌가?

JS: 그렇다. 잡스는 엄청나게 원리주의적 사람이다. 스스로 자만에 빠진 어리숙한 젊은이가 절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과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물론 게이츠 역시 대단한 인물임은 사실이지만 결코 스타일과 맛을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시장 지배력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태세였다. 잡스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는 완벽주의자였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위해 그 어떤 위협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디자이너, 아티스트들만이 갖고 있는 성격이었다. 따라서 훌륭한 CEO의 면면을 나름대로 판단해본다면 진정한 리더, 돌출적 성격의 리더, 설득의 대가 또는 사업수완의 대가 등으로 말할 수 있지만 스티브 잡스의 경우엔 "위대한 디자이너" CEO 였다. 그가 애플에서 이룬 모든 것은 디자인적 시각에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사용자 경험치를 위한 "look & feel" 디자인이던, 시스템 디자인이던 아니면 조그만 피씨비 보드 디자인에까지 잡스는 "아름다운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매킨토시가 나왔을때 잡스는 사용자가 절대 뚜껑을 열지 못하도록 했다. 내용물을 망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잡스의 완벽주의 시각에서 보면 제품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아름다운 디자인이어야 했다.

때문에 매킨토시 공장까지도 그렇게 만들어져야했다. 당시 최초의 완전 자동화 공장이었다. 로보트를 이용해 부품조립으로 완제품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지금은 큰 자랑거리가 못되지만 25년전엔 대단한 시스템이었다. 당시 로스 페로를 위시한 제네럴 모터스 CEO들이 견학을 목적으로 방문하곤 했다. 공장 디자인으로서는 비할데없이 훌륭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애플은 더 이상 제조공장을 갖고 있지 않다. HP도 다른 회사 모두 마찬가지다. 아시아로부터 EMS (Electronics manufacturing services)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LK: 나이키같은 회사가 좋은 비교대상이라고 할 수 있나?

JS: 디자인과 제품 개발 측면에서 나이키가 근접한 회사임은 맞다. 하지만 일본의 소비자 가전이 지배했던 당시 세상을 돌아보면 모든게 아날로그 제품들이었다.

잡스는 Sony같은 회사가 되고 싶었고 우리는 Sony의 모리타 아키오 대표를 방문하곤 했다. 아키오는 잡스처럼 최고의 스탠더드를 지향했고 아름다운 제품을 고집했던 인물이다. 그가 나와 잡스에게 최초의 소니 Walkmans을 선물로 준 일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단 한번도 본적없는 그런 제품이었다. 25년전 스티브 잡스는 워크맨을 손에들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곧바로 착수한 일은 워크맨을 뒤집어 까보는 것이었다. 모든 부품을 드러내고 각 부품과 제품의 마무리(fit & finish)가 얼마나 훌륭한지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맥킨토시 공장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 것이었다. 잡스가 소니 공장에서 본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그는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라 소니처럼 되고 싶었고 그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디지털 제품을 소니처럼 만드는게 너무나 어려운 아날로그 시대였다. 잡스가 아무리 연구하고 고민해봐도 얻을 수 있는 답은 없었다. 일본 제조업을 보자면 항상 부품 시장의 경쟁에서 시작된다. 가령 센서같은 부품을 제조해서 시장 경쟁에 뛰어들어 우수하다는 평이 나오고 시장점유를 높이면 완제품을 만들어 다시 시장에 뛰어드는 방법이다. 아날로그 시대 이런 방법은 아주 유효적절했다. 부품시장을 틀어쥐고 있으면 단가경쟁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일렉트로닉 제품 시장에선 그 반대여야했다. 부품으로 시작하는 것도 아니었고 사용자 경험치에서 출발하는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디지털 소비자 가전 시대가 열린 이래 15년간 소니가 고전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니 조직은 굴뚝산업 방식을 답습해왔다. 소프트웨어팀은 하드웨어팀 그리고 부품개발팀이 서로 다르게 놀았고 조직내부의 문제를 야기시켰으며 방대한 조직은 전형적인 관료적 모습으로 변질됐다.

소니야말로 iPod같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고 애플이 대신했다. iPod야 말로 스티브 잡스 방법론의 완벽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사용자 경험에서 시작한 제품이다.

"시작에서 끝까지"는 잡스의 모토였다.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항상 완전한 시스템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 어떤 회사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리더의 장점이었다. 그들은 제품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외주제작에 맡겨버린다.

iPod를 살펴보면 중국까지 퍼져있는 부품공급체인을 알 수 있고 이는 제품 디자인만큼이나 주의깊게 고안된 구조다. 제품디자인에 적용된 똑같은 완벽한 스탠더드가 만들어졌고 제조업 기준으로 볼 때 전혀다른 새로운 방식이 아닐 수 없다.

LK: 조그만 부품에서부터 완제품까지 모든 시스템 일체에 대한 잡스의 완벽주의 디자인 아이디어가 어디서 나왔다고 생각하나.

JS: 간단하다. 만약 자신의 구상을 첨부터 공개하면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변화를 주장하게 되고 결국 타협이 이뤄지게 된다. 원했던 결과물이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잡스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가장 작은 첫 시작부터 완벽해야한다고 믿는다.


LK: 잡스의 방법론은 모든 제품 개발과 제조의 과정으로 확대됐다. 제품의 포장 박스 뜯는것에까지 적용된다.

JS: 이렇게 살펴보자. 오리지널 매킨토시는 사실 진정한 오퍼레이팅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았다. 사람들은 계속 "왜, 맥 OS를 라이센스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사실 그 답은 가진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최초의 맥 오에스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사이에서 고안된 다양한 트릭(tricks)으로 만들어졌다. 사용된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오늘날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미약한 것이었다. 스크린상에서 그래픽 처리를 하려면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모든 파워를 가져와야했다. 작업을 분산시키기 위해 온갖 칩셋들을 마이크로프로세서 주변에 덕지덕지 붙여놔야만했다. 그래서 "ROM calling"이란 장치가 고안됐다. 400개의 명렁어가 하나의 ROM에 집적됐다. 맥 운영체제상에서 어떤 소프트웨어도 리얼타임으로 작동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각각의 부하를 덜어주는 400가지 명령어가 ROM에 심어진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차곡차곡 하드웨어 / 소프트웨어 일체의 디자인으로 고안됐으며 당시 "3 MIPS" (Million Instructions Per Second) 성능뿐이 안되는 마이크로프로세서로도 무리없이 작동할 수 있었다. 말이 마이크로프로세서지 요즘 디지털 시계만해도 최소 200-300 MIPS 프로세서가 사용된다. (주: 비교대상으로 iMac 기본모델에 적용되는 인텔 코어 i3 CPU는 40,000 MIPS)

잡스는 이처럼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발전을 이끌어냈다. 제한된 재원으로 말도 안되는 성능의 매킨토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따라서 경쟁사들이 80년대 맥을 뛰어넘는 디지털 컴퓨터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 자체였다. 90년대 도달해서야 무어의 법칙이 나오고 기술의 획일화가 이뤄지면서 디지털 가전이 어떤 모습을 하게될지 어렴풋이 떠올랐을 뿐이지 완제품이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실질적인 디지털 제품들은 21세기가 되면서 비로서 부품가의 하락과 대중화 그리고 소형화를 이뤘고 갑자기 "성능"이 사용할 만한 수준에 도달하면서 등장한 것이다. 25년전 잡스의 방법론이 옳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제품 디자인 제1 원칙이었던 사용자 경험, 단순화, 집중화, 타협불가, 시스템 전체에 대한 이해, 아티스트와 같은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입각한 매킨토시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고 모두들 더 강력하고 더 싼 제품에 집중했을 뿐이다. iPod가 등장했을때 이미 수천가지 MP3 플레이어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중 기억나는 제품이 있는가?

잡스는 자신이 모든 제품개발을 하나부터 열까지 관리해야만 했고 이에 대한 모든 결정을 내렸고 성공을 담보했다.

LK: 그렇다면 사용자 경험이야말로 잡스의 모든것을 설명하는 것인가.

JS: 당근이다. 사용자 경험은 제품 개발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데스크톱 출판용 제품이었던 아이튠스던 모두 시작과 끝까지 고려한 완벽한 제품들이다. 제조부터 부품공급체인, 마케팅, 리테일 스토어 등 모든게 시작과 끝을 고려한 원칙에서 출발한다. 내가 애플에 들어간 것도 마케팅 디자인 능력 때문이었지 컴퓨터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LK: 정말 재미나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자서전에서 당신은 애플 대표로서 "프로덕트 마케팅 회사"로 거듭나길 원했다고 말했었다.

JS: 맞다. 내가 애플에 들어가기 수개월 전부터 잡스와 나는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잡스는 마케팅에 대해 문외한 이었다. 하지만 중요하다는게 무엇인지 깨달은 이상 그는 가능한 무엇이든 배우기를 원했다.

한번은 펩시와 코카콜라 이야기를 해줬다. 두 회사는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펩시는 코카콜라에 시장점유 경쟁에서 1대9로 지고 있었다. 나는 소비자들에게 펩시가 작은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시켜 선택의 변화를 유도하는데 집중했다. 우리는 펩시를 마치 넥타이처럼 취급되는 방법을 선택했다. 당시 사람들은 어떤 넥타이를 할 것인가 고민하던 시절이었다. 넥타이는 사람들에게 "나 좀 봐주세요"하는것과 같은 효과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펩시를 손에 들고 있으면 바로 "이게 바로 내 모습이다"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리서치에 기반해서 우리는 사람들이 손님을 맞으면 키친의 냉장고 문을 열고 코카 콜라 병을 갖고 나와 테이블의 컵에 부어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반면 펩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키친의 냉장고를 열어 펩시를 들어내고 키친에서 준비된 컵에 부어 손님한테 가져다 줬다. 사람들은 펩시를 마신다는게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코카콜라에 대한 더 좋은 인상이 지배하는 구조였고 코카콜라는 더 멋진 넥타이였다.

우리는 사람들의 인식패턴을 논했고 이런 관점을 어캐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러기 위해 어떤 이미지를 창출해야하는지를 고민했다. 나는 60년대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교수의 강의를 통해 마케팅 전문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중산층의 등장임을 배웠었다. 중산층이야말로 미국 최초로 자신을 위해 소비를 결정할 수 있는 부류였다. 우리가 펩시 제네레이션 캠페인을 시작했을때 바로 중산층을 염두했었고 콜라를 마시는 사람들에 집중했지 콜라라는 제품에 집중한 적은 결코 없었다. 반면 코카 콜라는 항상 상품에만 집중했다.

우리는 펩시 마시는 사람들이 더 중요했다. 모토사이클 타는 사람들, 수중스키를 즐기는 사람들, 연을 날리는 사람들, 행글라이더들, 무언가 즐기는 사람들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즐김의 마지막엔 항상 펩시가 나타나도록 광고를 디자인했다. 펩시에서 나는 업계 최초로 라이프스타일 마케팅을 시작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펩시 티브이 광고는 흑백티브이 시절을 건너뛰고 큰 화면(19인치)의 컬러 TV가 안방극장을 장식하면서 시작됐다. 우리는 할리웃 최고의 영화 감독을 만나 60초짜리 광고 무비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라이프스타일을 묘사하면서 펩시가 넘버원이란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어야했다. 펩시는 항상 넘버원이었다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잡스는 이런 이야기와 아이디어에 매료됐다. 우리는 매킨토시의 완성을 기다리면서 어떤 방식으로 마케팅을 할지를 협의했다. 첫째로 잡스는 매킨토시가 특별한 제품이란 점을 흘리면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소비자의 기대치를 높이는 캠페인을 생각했다. 매킨토시 출시 초기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대다수 컴퓨터 제품들이 그렇듯이 사용기능에 집중하곤했다.일부에선 매킨토시가 장난감 수준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생각은 시간이 흐르고 더 발전된 강력한 제품들이 나오면서 인전받기 시작했다.

LK: 물론 애플은 지금도 라이프스타일 광고캠페인으로 유명하다. 사용하는 사람들을 부러움의 대상으로 만들고 iPod은 젊은 사람들에게 어필한다.

JS: 오늘날 스티브 잡스의 화려한 성공에 대해 내가 일조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잡스의 뛰어난 점은 무언가를 떠올리고 이해하고 그것들을 자신만의 디자인 방법론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이다. 모든것이 어떻게 디자인하는가에 달려있다.

또 다른 측면으로 보자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날 각각의 미팅을 가졌던 내 친구의 경험담을 이야기해보자. 작년이니까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부품 공급자였던 그는 애플 사무실부터 찾아갔다. 실무팀과의 미팅이 막 시작하려는데 갑자기 디자인팀 수명이 문을 열고 들이닥치자 앉아있던 직원 모두가 하던 말을 멈췄다. 애플 조직에서 디자인팀은 가장 중요한 부서며 그들이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지를 말해준 단면이었다. 모든 직원들이 스티브 잡스와 디자인팀이 매일 독대하는 사이라는 것을 잘알고 있으며 테크 업계에서 디자인팀이 CEO에게 직보하는 체계는 애플이 유일하다.

친구는 몇시간 후 마이크로소프트를 방문해 미팅을 가졌다. 다양한 이야기가 시작됐지만 디자이너들이 직접 참가해서 질문을 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미팅에 참석한 엔지니어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말하면서 그런 기능들이 디자인에 포함돼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디자이너가 아니라 개발진들이 말하는 것이였으며 이는 실패의 지름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만 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또 고용될때 어마어마한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하는것도 잘 알려져있다. 하지만 직원들이 똑똑하고 탈렌트가 많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애플에서 디자인은 잡스가 직접 이끄는 조직의 최상위 개념이다. 그렇지 못한 회사의 경우 곧 디자인팀은 어데선가 관료주의에 파묻혀있다는 것과 같다. 관료적인 조직내에는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만 "예스"라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다. 따라서 제품은 항상 타협의 산물이다.

다시 말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철학에서 직원들이 내려야할 가장 중요한 결정은 "해야할 것"부터가 아니라 "해선 안될 것"에서 출발한다. 이것이야 말로 미니멀리스트 매니지먼트다.

잡스를 초창기부터 알아왔던 사람으로서 잡스의 제1 원칙이 지금에와서 더 다듬어지고 더 훌륭하게 발전했지…사라졌다는 말을 들은적은 없다.

더 재미난 사례를 보자. 잡스가 리테일 스토어 사업을 벌였을 때의 일이다.

잡스는 미국 최고의 리테일 전문가를 영입했다. 미키 드렉슬러는 패션프란치즈 리테일숍으로 유명한 GAP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드렉슬러의 조언을 토대로 잡스는 샌프란시스코에 최초의 애플 리테일 스토어를 시험가동했다. 잡스는 리테일 사업을 제대로 배웠고 미국 최고의 리테일러로 부상했다. 이곳은 지금까지도 애플 리테일 스토어중 평당매출 넘버원, 아니 전세계 리테일 스토어중 최고의 매출을 자랑한다.

같은 지역의 소니 스토어에 가보고 뉴욕 57번가 노키아 스토어에 가보라. 파리만 날린다. 애플 스토어는 손님들로 항상 북적거린다. 사용자 경험을 중시한 마케팅의 차이 때문이다. 다른 스토어들도 물론 들어가서 만져보고 느껴볼 수 있다. 하지만 애플 스토어는 말 그대로 amazing 장소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 친구처럼 이야기를 주고받고 물건을 산다.

다시말하지만 넥타이 이론이다. 애플 스토어를 방문한다는 것은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야. 내가 바로 지니어스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사용자 경험치란 실제 제품을 사용해본 것에서부터 제품을 표현한 광고와 제품 자체의 디자인까지 모든것을 포함하고 있다. 잡스는 이 부분에서 천재적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게 완벽하게 들어맞아 떨어지는 뗄래야 뗄수없는 제품과 소비자의 관계를 만들어냈다.

다른 사람은 절대 찾아 볼 수 없는 문제를 발견하고 거부하는 잡스다. 이런 그의 요구가 아무리 지나치더래도 사람들은 결국 애플 제품을 보고 "도체 어떻게 이런 제품을 만들수 있지"라고 한다.

잡스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적이다. "최고의 창조적인 사람들만이 최고의 커스토머를 위해 일하고 싶어한다. 당신의 창조적 작업을 알지 못하는 커스토머, 또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용기가 없거나 창조적인 것에 흥분하지 못하는 커스토머라면 그건 커스토머가 아니다."

대다수의 기업들이 분업화 돼있다. 광고제작에 대해 CEO는 마지막 결재자일 뿐이지 진행과정에 대해 알 필요가 없는 존재다. 펩시에선 그럴 수 없었다. 애플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지금까지도 잡스는 직접 모든일을 관리한다. 그만큼 광고가 중요한다는 의미다.

LK: 동의한다. 애플 광고에이전트인 Lee Clow가 매주 스티브 잡스와 독대한다고 들었다.

JS: 애플이란 회사가 디자인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을 알고나면 왜 애플이 경쟁사들과 다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리테일 스토어의 유리창과 유리 계단만 봐도 차이를 알 수 있다. 특별제작된 강화유리다. 항상 남들과 차별화를 고민하는 전형적인 애플스러움이라고 할 수 있다. 잡스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가 항상 새로운 스탠더드와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잡스는 항상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고 또 제거하고 가장 단순하면서도 모든것을 갖춘 미니멀리스트 디자인을 생각한다. 단순함과 미니멀리스트는 다른 개념이다. 잡스는 시스템 디자이너이고 복잡한것을 가장 단순화시키는데 천재다.

그런 생각을 못하는 사람들은 결룰 단순한 결과만 갖게될 뿐이다. 너무나 많은 회사들이 따라하다 실패하는 것을 봤다. 마이크로스프트 Zune이 좋은 예다. 라스베가스 전자쇼에서의 Zune 런팅행사에 참가했었다. 행사 자체가 너무 재미없으니 와서 보는 사람도 없었다. 시작부터 죽은것이었다. 슈퍼마켓에 다 시들은 채소를 갔다 놓은것과 다를바 없었다. 물론 개발한 사람들이말로 똑독한 인재들이란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도 달랐던 것이다. "세번째가 돼야 성공한다"는 실리컨 벨리에 떠도는 마이크롯프트 소문이 틀린말은 아니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철학은 먼저 선보이고 나중에 고치자에서 출발한다. 잡스라면 절대 그렇게 냅두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으면 절대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LK: 광고 캠페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애플에서 광고는 특히 중요한 요소였다. 당신 자서전에서 "전략적 광고"라고 말했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개념이었다.

JS: 내가 실리컨 벨리에 발을 들여놨을때 광고란것은 전무했다. 아마 애플과 HP 정도만이 광고에 대해 관김을 갖고 있을정도였다. 디지털 컴퓨터 제품갖고 광고를 시도하는 회사는 거의 없었다. 내가 애플에 발들여놓은 이유도 광고를 통해 애플 브랜드를 제고하기 위함이었다.

애플 로고는 당시 무지개색이었는데 Apple II가 최초의 컬러 컴퓨터 였고 누구도 따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지개색을 사용했다. 잡지나 제품 박스에 4도 컬러를 사용하려면 이미 잡스는 나름대로 특유의 고집을 피우며 6도 컬러 인쇄를 해야한다고 했다. 따라서 언제나 애플로고가 프린트 될때는 항상 여섯 컬러가 사용됐다. 것만해도 30-40%의 가격상승 요인이었다. 그는 내가 만나기 전부터 이미 완벽주의자였다.


LK: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성격 때문에 돌아버릴 정도였다. 당신은 어땠나?

JS: 맞는 일이라면 그렇게 돌아버릴 일은 아니었다. 내가 테크업계에서 배운것은 사실 성공과 실패가 정말 종이 한장 차이란 것이었다. 테크 업계야 말로 항상 리스크를 떠안고 사는 곳이다. 애플같은 회사라면 매일매일 외줄타기처럼 위험을 안고 사는 회사였다.

어느쪽에서 그 줄을 타고 시작하던 위험은 매한가지였다. 물론 때로 잡스가 전략적으로 잘못된 결정을 내린적도 있다. 가령 매킨토시에 하드드라이브를 넣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 좋은 예다. 누군가 왜냐고 묻자 그는 플로피 디스켓 하나 집어 던지면서 "그거 하나면 된다"고 했었다. 반대로 잡스는 AppleTalk과 AppleLink란 기능을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가했다. 때문에 레이저 프린터를 시작할 수 있었고 데스크 톱 출판의 길이 열렸다.

AppleTalk 만해도 매킨토시 만큼 혁명적인 기능이었다. 또다른 미니멀리스트 접근법이였다. 그 어떤 회사들도 풀어야할 숙제라고 생각지 않던 것을 잡스는 풀어야할 과제로 여겼고 성공해내고 말았다. 잡스는 당시로서는 15-20년 지나서야 풀어야할 숙제를 고민하고 있었다. 주변기기 규격의 통일화와 보다 강력한 프로세서들이 나와줘야만 가능한 일이었지만 시간을 앞서가는 그의 지혜와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돌이켜 보면 내가 애플의 CEO로 고용된 것은 정말 실수였고 잘못된 결정이었다. 잡스가 원했던 넘버원 CEO도 아니었다. 바로 잡스가 원했던 직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회는 20대 중반의 잡스에게 CEO 직을 고려하지 않았다.

신생 산업계에 어떤 인물을 CEO 로 앉힐지를 고민하다 지친 애플 이사회는 주주였던 데이빗 라커펠러의 제안으로 컴퓨터 업계 출신이 아닌 인물을 찾아보자는데 동의했다. 제리 로치란 미국최대의 헤드헌터를 찾았고 나에게 연락이왔다.

나는 컴퓨터가 몬지 전혀 알지도 못했다. 조건은 나와 잡스가 파트너로 일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케팅을 책임지고 잡스가 테크놀러지를 책임진다는 것이었다. 내가 CEO가 된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한 것은 잡스가 바로 그자리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당시 이사회가 "잡스를 CEO에 앉히기 위한 방법이 무엇일지 연구해보자"는 생각을 했다면 훨씬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며 서로 각자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사회 회상이었고 최대주주였으며 매킨토시 개발디비젼을 이끌었다. 이 때문에 직급상 그는 내 윗 사람이기도 했고 아랫 사람이기도 했다. 만약 이사회가 좀더 명확하게 업무영역을 나눠놓았다면 나와 잡스가 충돌할 일도 별로 없었을 것이며 성공을 위해 어떻게 일해야하는지도 명확해졌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떠난 86년에도 난 여전히 컴퓨터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당시 이사회를 열고 이사들에게 CEO로 잡스냐 아니면 스컬리냐를 선택할 것을 의제로 올렸고 이사회는 스컬리의 손을 들어줬음.) 내 첫 임무는 회사를 고쳐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회사를 고쳐서 다시 성공적인 회사를 만들것인가는 알지 못했다.

당시 우리가 한 모든 것은 모두 잡스의 머리에서 나온것들이었다. 잡스의 방법론을 이해했기 때문에 바꾼것은 없었다. 우리는 매킨토시 오에스의 라이센스를 막았고 산업디자인에 집중했다. 회사내 디자인 조직을 새롭게 만들었고 그 조직은 아직까지 존재한다. 파워북과 퀵타임을 개발했고 물론 이 모든것은 스티브 잡스가 뿌려놓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세일즈와 마케팅 그리고 제품의 진화에 총력을 기울였다. 제품 디자인도 잡스의 아이디어였고 따라서 내가 애플에서 만든 모든 결과물은 사실 잡스가 시작한 것들이라고 해야 옳다.

애플에서 내가 가장 후회하는 두가지 결정이 있다. 왜냐면 그것들은 애플을 다르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모토롤라 프로세서를 더이상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애플에서 가장 뛰어난 두명의 엔지니어를 차출해 다른 팀에 배치하고 그돌로 하여금 애플의 미래를 연구해보라했던 일이다.

그들은 후에 어떤 RISC 칩을 사용해도 상관없다며 사업상 이득이되는 칩을 선택하라고 헸다. 그러면서 RISC에 비해 더 복잡한 명령체계인 CISC칩은 절대 사용하지 말것을 추천했다. Intel에서 매우 공격적으로 애플을 상대로 로비해왔었지만 우리는 결국 IBM/모토롤라가 생산하는 PowerPC 로 결정을 내렸다. 지난일이지만 그건 정말 천추의 한이 되는 잘못된 결정이었다. 우리가 인텔과 협력했었다면 애플 제품을 위한 부품 확보가 더 용이했었을 것이며 90년대 상황에서 훨씬 유리한 사업을 벌일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프로세서의 발전으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이뤘고 결과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즈 3.1을 출시하게됐다.

이전까지 우리는 애플이 그래왔던 것처럼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모든것을 직접 만들었다. 하드웨어가 보다 강력해지면서 애플에서 해오던 모든 하드웨어적인 기능이 소프트웨어만으로도 처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배를 잘못탔고 인텔은 110억달러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하면서 그래픽 가속을 발전시켰다. 내가 기술적인 배경이 모자랐기 때문에 결정을 내릴 수 없었고 추천을 따라갔을 뿐이었다. 정말 잘못된 결정이었다.

두번째 실수는 내 스스로의 잘못이다. 내가 제대로 판단했다면 스티브 잡스를 찾아갔어야했다.

당시 나는 이미 애플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10년은 너무 길었고 그 이상 대표직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내 고향인 동부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사회에 그런 결정을 알렸고 IBM이 나를 고용하려했다. 이사회는 나에게 머물어달라고했고 머무르니까 나를 해고했다. 내가 설 자리는 없었다.

이사회는 애플을 팔아치워야한다고 생각했다. 93년 내게 주어진 과제는 애플을 인수할 회사를 찾는 것이었다. AT&T와 IBM 등 투자자들을 찾아가 애플인수 의사를 타진해봤다. 아무도 애플을 원하지 않았다. 모두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잘하는 시장에서 위험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그때 제대로 생각을 했다면 이사회를 상대로 "누구보다 애플을 잘알고 이해하고 창립한 사람과 상의하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잡스를 다시 복귀시키자"고 했어야했다.

당시로서 가장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결국 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잡스를 찾아갔다면 그때 애플은 그대로 회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해고된 이유는 회사 내부에서 미래 전략을 놓고 두가지 방향설정으로 엇갈리면서 시작됐다. 한쪽에선 애플이 비지니스 컴퓨터 회사로 가야한다고 했다. 그들은 애플의 핵심인 디자인 조직을 없애자면서 애플 컴터를 개방해 라이센스화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쪽에선 나를 포함한 사람들로 애플 방법론을 고수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사용자 경험과 디자인 관련 모든것을 이어가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차세대 기기로 나아가고 그 예가 뉴턴이었다.

하지만 뉴턴은 실패했다. 새로운 방향이었고 근본적으로 다른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결과는 나의 해고로 이어졌고 두명의 CEO가 이후 애플을 지휘했다. 애플 오에스를 라이센스화했고 애플의 핵심인 디자인 조직을 없앴다. 디자인도 광고 캠페인도 무시했고 모두가 사용하는 컴퓨터를 만드는 회사처럼 밀어부쳤다. 결국 회사는 궤도에서 이탈했고 거의 망할 뻔했다.

내가 확신하는 것은 만약 스티브 잡스의 애플 복귀가 6개월만 더 늦었다면 단언컨데 애플은 더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잡스가 돌아와서 한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않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원래 하던것을 그대로 다시 시작한 것이다. 마치 언제 떠났었냐는듯이 잡스의 방법론은 그렇게 다시 시작됐다.

내가 애플 대표로 재임했던 시기를 되돌아 본 다면 그의 철학, 디자인 철학을 따라한 것 뿐이었다. 불행하게도 내가 그일을 그리 잘하진 못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디지털 소비자 가전 제품을 만들 타임이 아니었고 잡스 역시 NeXT 를 만들었지만 애플과 마찬가지로 타이밍이 적절치 못했다. 그가 NeXT에서 애플보다 더 잘했던 것은 차세대 OS를 완성한 것이었고 결국 오늘날 애플의 OS X를 가져왔다.

LK: 많은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가 당신이 개발 지휘를 했던 "Newton"을 의도적으로 사장시켰다고 말한다. 그가 복수심에서 그랬다고 생각하나?

JS: 아마도…그가 말하지 않는 이상 내가 알 수는 없다.

뉴턴 역시 너무 시대를 앞서긴 했지만 훌륭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뉴턴이야 말로 애플을 파산에서 구해준 프로젝트다. 대부분 사람들은 뉴턴을 위해 우리가 새로운 차세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만든것을 모른다. 우리는 Olivetti회사와 영국 캐임브리지 출신으로 Acorn 컴퓨터사를 설립한 엔지니어 Harman Hauser와 함께 조인트 벤처를 설립했다. 허먼이 ARM 프로세서를 디자인했고 애플과 올리베티가 47%의 주식을 소유하는 것으로 자금을 만들었다. 나머지 지분은 허먼이 소유했고 그는 뉴턴을 위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제작했다. 작은 프로세서지만 뛰어난 그래픽 성능을 가졌다. 애플이 자금난에 허덕일때 ARM 지분을 매각해 팔억달러를 확보했다. 계속 갖고 있었으면 더 큰 돈이 됐겟지만 애플로서는 당시 생존에 필요한 자금줄이 됐다.

상품으로써 뉴턴은 1억달러가 투입된 실패작이었지만 ARM사는 오늘날 Intel을 제치고 스마트폰 업계 최고의 CPU 디자인 회사다.

애플은 테크놀러지 회사라기 보다 디자인 회사에 가깝다. iPod를 보면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만든 테크놀러지이지만 애플이 잘 활용해서 빛을 발하는 그런 제품임을 알 수 있다. 매킨토시 역시 처음엔 모든게 Xerox에서 만들어진 기술이었고 애플이 Xerox의 기술진을 스카웃해서 만든 것이다.

애플이 만든것들은 모두 최초엔 실패작이었다. 너무 일직 나와서 그런 측면도 없지않다. 매킨토시 이전에 리사가 실패했고 PowerBook 이전에 매킨토시 랩톱이 실패했었다. 당시 신개발 제품이 실패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뉴턴을 만들면서 우리가 실패한 것은 지나친 과장 광고 때문이었다. 뉴턴의 실제 성능을 너무 높게 부풀려놓는 바람에 아주 유명한 실패작이 돼버렸다.

LK: 잡스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누군인다. 언제가 당신은 잡스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폴라로이드 회사를 설립한 에드윈 랜드라고 했다.

JS: 잡스와 함께 랜드박사를 만난적이 있다.

당시 랜드 박사는 폴라로이드에서 해고됐던 참이었다. 캠브릿지에 자신의 연구소를 만들었는데 그곳을 방문했었다. 잡스와 랜더박스가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랜드박사가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어캐 만들어져야하는지를 정확하게 상상할 수 있다"며 "내 앞에 새로운 제품이 만들어진 것처럼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잡스는 "맞다. 나도 매킨토시가 눈앞에 있는것처럼 그렇게 보고 있다"며 "계산기를 사용해본 사람이라해서 매킨토시가 어떤 제품이어야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잡스는 "소비자 여론조사를 진행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저 새로 만들어내고 사람들에 어떠냐고 물을 수밖에 없다" 말했다.

두사람은 제품을 창조하는 것보다 발견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둘 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제품들이 이미 존재해온 것임을 잘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본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발견자들이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항상 존재해왔듯이 매킨토시 역시 그랬다. 다만 언제 발견하는가에 달렸을 뿐이었다. 잡스는 랜드박사에 대해 무한한 존경심을 표했고 그와 만나는 것을 즐겼다.

LK: 그외의 존경하는 사람은 없었는가.

JS: 사업가 로스 페로와 무척 친했다.

페로는 애플 본사로 자주 방문했도 매킨토시 공장까지 견학했다. 로스 역시 시스템 전반의 생각을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EDS (Electronic Data Systems)를 만들었고 뛰어난 경영자였다. 그는 항상 큰 생각을 품어왔고 세상에 변화를 주고 싶어했다. 잡스의 또다른 영웅이었다.

소니의 모리타 아키오 역시 잡스가 존경한 인물이다. 소니의 창업자이자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낸 디자이너였고 잡스 역시 같은 반열의 인물이다.

LK: 휴렛-패카드는 어떤가. 잡스는 워즈니악과 함께 어린시절 휴렛-패커드 회사로부터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JS: HP는 애플의 모델이 아니었다. HP가 기업으로서 HP만의 방법론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적 없다. 창업자인 빌 휴렛과 데이빗 패커드가 직원들을 밤늦게까지 일하도록 독려했고 엔지니어 회사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창조적인 회사는 아니었다. 애플은 엔지니어가 아닌 디자이너 회사였다. HP가 그때까지 훌륭한 디자인의 제품을 만든적도 없었고 훌륭한 엔지니어링 회사였음은 사실이다. 따라서 애플이 HP를 따라할 것은 하나도 없었다.

LK: 스티브 잡스가 HP의 도움을 받은적도 있지 않은가.

JS: 물론이다. 당시 실리컨 벨리의 문화였고 HP가 실리컨 벨리에 기여한 공로가 존재했다. 벤처창업 문화도 같은 맥락에서 출발했고 HP가 창업문화의 대부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애플에서도 디자이너가 조직의 톱에 있었을 뿐이지 엔지니어들은 매니저들보다 더 중요한 존재였다. 소프트웨어 개발만 보더래도 빌 애킨슨, 앤디 허츠필드, 스티브 캡스 등과 같은 최고의 엔지니어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디자이너란 직함을 가졌다. 그들이야말로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만든 코드의 작동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훌륭하게 만든 코드인가로 결정난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들이 하는 작업을 보면 존경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마치 작가와도 같았다. 다른 직원들은 이들의 코드 라이팅 스타일을 배우려고 했고 하드웨어 디자이너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천재들과 다를바 없었다. 디자이너란 직함이 괜히 주어진게 아니었다.

LK: 스티브 잡스 스스로도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본사 주차장에 있는 모든 벤츠들을 보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다고 하던데…

JS: 잡스는 물건이 어캐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을 소유했다. 글자가 어떤 방법으로 인쇄되는지 폰트, 컬러, 레이아웃 등등 모든게 관심사였다.

잡스가 회사를 떠난뒤 우리는 일본에서의 사업확장을 시도했다. 당시 우리는 4백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는데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소송을 당할 판이었다. 모두 돈만 먹고 있는 일본 사무실을 폐쇄하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고 일본 사업을 계속 진행했으며 4년뒤엔 20억달러 매출을 달성하면서 일본내 2위의 컴퓨터 회사로 올라섰다.

당시 우리는 일본 사람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줄 알아야했고 제품은 싱가폴 공장에서 조립했다. 박스를 열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게 제품 매뉴얼이었는데 매뉴얼이 거꾸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자 일본 업자들이 제품인수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미국 같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매뉴얼이 어떻게 놓였던 그게 무슨 상관인가. 하지만 일본사람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미국과는 전혀 다른 비지니스 문화였고 그들만의 기준이었다. 지금도 애플이 얼마나 디테일에 집착하는지를 알수 있는 단면이 있다. 애플 제품은 소비자에게 "먼저 박스를 오픈해봐라!"고 말한다. 박스의 디자인과 접지 부분, 또 종이 재질과 인쇄 등 모든게 완벽하다. 마치 불가리 같은 명품 보석회사의 제품 박스를 열어 보는 듯한 느낌이다. 당시엔 일본의 제품이 그랬다.

애플에서 이탈리아 디자인을 연구했고 HiFi 제품 디자인의 대가 헬무트 에스링거의 프로그 디자인 연구소를 집중 조사했다. 그렇게해서 만들어진게 Apple II 의 스노우 화이트 디자인었다. 당시 얇고 작은 케이스에 줄무늬와 순백색으로 만든 Apple II는 센세이션 그 자체였다.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의 모양과 마무리(fit and finish) 기법 연구를 통해 나온 디자인였다. 80년대 실리컨 벨리에서 우리처럼 일하는 회사는 전무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 역시 디자인에 관심갖고 전공도 했었지만 이미 잡스가 애플에 남긴 영향 때문이었다.

잡스가 떠난 이후 줄곧 나는 도마위에 올라야했다. 사람들은 "컴퓨터 컴자도 모르는 사람을 대표에 앉혔냐"고 했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사실은 애플이 컴퓨터회사가 아니라 제품 디자인, 제품 마케팅 그리고 포지셔닝 전문 회사였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우리를 보고 "수직적으로 결합된 광고 에이전시"라고 비아냥거렸다. 물론 비열한 사람들의 말이었다. 당시의 자존심 강한 엔지니어들에게 수치심을 줄만한 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업계를 한번 살펴 보자. 모든 회사가 부품공급까지 포함해서 수직적 통합 모델을 갖고 있다.

comment : (1)

ㅓㄷ꾜   2010/11/30 11:42 [delete] Reply
글 잘읽었습니다. 좀 더 가까이 들어온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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