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따라잡기] 18. “애플 디자인”

October 21,2011                      hit:(3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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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이 다가오면서 실리컨 벨리의 최대 뉴스는 애플이었다. “잡스의 부활,” “애플의 미래” 등 연일 빠지지않는 언론의 단골 메뉴였다. 여기에 “Think Different” 마케팅 홍보 캠페인이 전세계적으로 시작되자 애플 캠퍼스에서 도데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폭되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전망 그리고 추측만이 전부였다. 실리컨 벨리의 한 기자는 당시 상황을 “애플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지구상에서 증발해버린 듯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는 비밀리에 신제품 디자인에 몰두하고 있었다.

잡스는 애플에 복귀하자마자 하루가 멀다하고 본사 건물의 모든 구석을 뒤지고 다녔다. 회사안에 누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속속들이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맘에 들지않는 제품이나 부서가 눈에 띠면 그자리에서 “청소”해야하는 상황도 속출했다. 한번은 지하실을 시찰하던 중이었다. 잡스는 여기서 애플의 미래를 발견했다.

널부러진 쓰레기로 가득차 사람들이 지나다닐 틈도없고 해빛도 들지않는 우중충한 디자인실었다. 미대 출신의 디자이너들이 나무, 스치로폴, 상자등을 이용해 디자인을 하다보니 사무실은 항상 지저분했다. 잡스의 눈이 번뜩였다. 한 테이블위에 괴상하게 생긴 컴퓨터 한대가 놓여있었다. 전체적으로는 달걀 모양이었고 수직으로 비스듬히 잘라낸 평면에는 15인치 모니터가 붙박이로 자리잡고 있었다. All-In-One 컴퓨터!

“이거 누가 만들었지?” 흥분한 잡스의 목소리였다. 한 구석에서 덩치 큰 체구의 남자가 구멍난 티셔츠에 청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흐느적 흐느적 걸어나왔다. 잡스는 자기와 같은 옷차림에 강한 영국식 발음을 가진 30대 초반의 조너던 아이브 디자인팀장과 이렇게 조우했다. 아이브는 이날 잡스에게 붙들려 새벽 2시까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잡스의 마음속에는 이미 신상품 윤곽이 그려지고 있었다. 중저가형의 인터넷 컴퓨터이면서 자신이 만들었던 최초의 매킨토시와 일맥상통하는 일체형 디자인어야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구상을 만족시켜 줄 디자이너를 찾던 중이었다. 아이브를 만나기 직전까지 잡스는 IBM 노트북 디자이너 리처드 세이퍼와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지오르게토 지기아로를 스카웃하려던 중이었다.

잡스의 디자인 감각은 77년부터 출발한다. 애플 창업당시 첫 사무실 건물에 소니가 있었고 잡스는 틈만나면 소니 제품을 구경했다. 자연스럽게 어디서 디자인한 것인지를 캐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의 에슬링거가 이끄는 Frog 디자인 회사였다. 에슬링거는 초현실주의적 감각을 혼합한 인더스트리얼 디자이너였고 잡스는 그를 우상처럼 여겼다. 84년 베이지색 애플 매킨토시가 에슬링거에 의해 디자인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잡스는 에슬링거보다 한차원 앞서있는 포스트모더니스트적이면서 미니멀리스트적인 아이브의 디자인 세계에 빠져들었다. “전혀 디자인하지 않은것 같은 제품 디자인이 나의 철학”이라는 아이브의 설명속에서 잡스는 애플의 미래를 찾은것처럼 기뻐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잡스는 간부회의를 소집해 애플의 마스터 플랜을 일사천리로 설명했다. 회의가 끝나갈 즈음 잡스는 조너던 아이브를 불러들였다. “지금까지 애플이 나갈 방향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그 방향의 조타수는 디자인 수석부사장 죠니가 맡아줄 것이다.”

이후 두사람은 애플의 쌍두마차가 됐다. 잡스가 앞장서고 아이브가 밀어주는 파트너쉽을 이뤄 아이맥, 아이팟, 맥북에어, 아이폰, 아이패드로 이어지면서 애플 디자인을 정의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스티브 잡스와 가장 많이 독대한 사람이 바로 아이브였다. 그는 잡스와 일란성쌍둥이다. 하지만 성격은 잡스와 대척점을 이룬다.

런던 태생의 아이브가 영국에 떴다하면 공항에서부터 수많은 팬들이 몰려들 정도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업계의 독보적인 존재다. 아이브는 잡스처럼 특출란 학력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영국 뉴캐슬 폴리테크닉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정말 자기가 원하고 좋아하는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다. 아이브와 룸메이트를 했던 친구의 전언에 따르면 “과제물을 받아들면 대개의 학생들이 겨우 하나 완성해서 제출하기 바빴지만 아이브는 한개의 디자인을 위해 수십 수백가지의 변형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브의 디자인 능력이 노력에 의해서 이뤄진 것임을 알수 있는 대목이다.

아이브는 조용한 그의 말투처럼 내성적인 사람이다. 여기에 서양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겸손함까지 갖춘 리더. 영국 디자인업계의 최고영예인 로열 소사이어티 오브 아트 상을 받으며 대학을 나온 아이브는 미국에서 첫직장을 구하지만 항상 마주치는 문제는 디자인 보다 단가를 낮추기에 급급한 기업문화였다. 실망이 컸던 아이브는 92년 마지막으로 자신의 꿈을 펼쳐보겠다는 희망으로 애플에 입사했다. 하지만 회사는 추락하는 날개였다. 디자인팀 지원은 날로 삭감되고 렌더링을 위한 고가 장비까지 내다 파는 형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브는 묵묵히 자신만의 디자인 업무를 수행하면서 동료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당시 디자인팀의 한 동료는 “죠니가 아니었다면 디자인팀은 모두 뿔뿔히 흩어지고 회사를 떠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적자의 구렁텅이에 빠졌던 애플이었지만 아이브가 디자인한 “파워북” 덕분에 가장 인기있는 노트북으로 매출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는 잡스처럼 타고난 리더다. 하지만 윽박지르는 리더가 아니라 설득하고 실천하는 리더다. 그래서 동료들이 함께 일하지 않을 수없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내놓는 제품마다 최고의 디자인으로 찬사받는 애플 디자인팀의 인원은 겨우 12명. 아이브 부사장은 “제품 디자인과 같은 창조적인 일을 하는데 사공이 많을 필요는 없다”며 “애플 디자인은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12명 전원이 합의해내는 최고의 선택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유독 자아가 강한 예술가 집단을 이끌면서 협업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브는 그런 집단을 이끌며 공통분모를 찾아낸다. 동시에 디자이너 개개인의 창의성을 독려하며 최상의 성취감을 불어넣는 자신만의 리더쉽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애플의 성공요인으로 작용했다.

97년 잡스의 특명으로 신상품 “iMac” 개발이 진행되면서 아이브는 이제것 본적없는 “사탕색 반투명” 케이스를 디자인한다. 그는 케이스의 질감과 색감을 끌어내기 위해 사탕공장을 방문해 각기 다른 사탕색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관찰했고 또 중국의 케이스 공장을 찾아가 6개월이나 상주하면서 자신이 의도하는 플라스틱 케이스가 나오도록 진행했다.

아이브는 이렇게 말한다. “애플 디자인팀은 돈을 벌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게 우리의 목적이다.” 잡스의 전폭적인 신뢰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플의 신상품 기획은 항상 외형 디자인이 먼저 진행되면서 이에 맞춰 부품 디자인이 이뤄진다. 비용과 시간 때문에 99%의 제조사들은 시도조차 못하는 제조기법이다. 이러한 애플의 제조 방식에 조소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애플만의 독창적인 경영 개념으로 자리잡으며 가장 높은 소비자 만족도 그리고 최고의 수익성을 안겨주는 제조 기법으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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