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2.0]  14. Connecting Dots

August 26,2011                      hit:(3591)

(note: 14회 기고 마감을 하루 앞두고 스티브 잡스의 애플 CEO 사임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지난 1월초부터 두번째 병가중인 상황에서 나온 소식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는 군여.

오래전부터 “돈 다발 들고 무덤에 들어갈 일은 없다”고 했던 잡스였는데 오는 11월엔 자신의 첫 공식 자서전이 앞당겨 출간된다니 신변정리와 가족들과의 시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번은 왔다 가는 인생 누구보다 선굵은 삶을 살았던 잡스입니다. 차고에서부터 시작한 컴퓨터 회사를 전세계 최고 회사 반열에 올려놓았죠. 그의 족적을 짚어보면 코미디와 비극, 오페라와 심포니가 뒤엉킨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삶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가족들 모두가 평화로운 시간을 갖게되길 기원합니다. 오늘 기고는 인생의 마지막 챕터를 장식하는 잡스를 생각하면서 만들어봤습니다.)


“…점들을 이어가는 작업이 미래를 그려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지금까지 만들어진 무수한 점들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은 스스로 만들어온 이 점들을 운명처럼 믿어야만 합니다…그런 자세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05년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대학 졸업 축사 중 한구절이다. 그는 리드 컬리지 시절 훔쳐들었던 서예 과목을 떠올렸다. 획을 통해 문자의 혼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서예 경험담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며 진취적인 자아의식을 강조했다. 97년 애플 대표이사대리로 취임한 잡스는 7년 동안 회사재건에 온 정열을 퍼부어 애플 반전드라마의 신화를 창조했다. 동시에 전세계 IT업계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하루아침에 얻은 횡재가 아니었다. 잃어버린 점을 찾아 연결하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공동창업한 애플컴퓨터의 초기 성공과 95년 픽사의 대박 성공때도 잡스에 대한 평가는 모두 “억세게 운좋은 젊은이” 정도. 그리고 넥스트 운영체제를 4억3천만달러에 애플에 매각하자 실리컨 벨리에서는 “잡스가 애플을 접수하기 위해 꼼수를 부린다”고 전했다. 하지만 잡스는 매번 마주치는 인생의 굴곡점에서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길 아밀리오 애플 대표의 요구로 비상근 고문직을 수락했을때 잡스는 철저하게 회사 경영에서 배제됐었다. 아밀리오는 잡스가 개발팀의 조언자, 또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관계개선을 위한 얼굴마담역을 원했다.

잡스는 아멜리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줬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새로운 “점”이 그려지고 있음을 감지하고 과거의 점들을 연결하며 무엇이 잘못됐었는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 혁명의 불을 지폈던 애플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절망적인 상황에 이르렀는가를 고민하는 것은 창업자 잡스로서는 당연한 것이다.

컴퓨터 업계를 돌아보면 사람들은 책상위에 올려 놓은 모니터와 키보드 그리고 컴퓨터 본체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업계는 하드웨어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소프트웨어, 다시말해 운영체제(OS)와 응용 프로그램이 필수였다. 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준비됐다해서 판매되는 제품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잡스는 한결같이 “혁신적인 신제품” 하드웨어만을 고집해왔다.

게다가 프로그래머로 통하는 개발자들의 확보와 컴퓨터 기능을 소화해서 잠재고객을 교육시켜 줄수있는 IT매니저 또는 컴퓨터 전문가가 있었야만 했다. 처음부터 소비자와의 직거래는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애플은 소비자와의 직거래만 고집하고 있었다.

애플 컴퓨터 창업시절 애플 II 모델이 전대미문의 광풍을 불러일으키며 PC 붐을 주도했을때 애플에는 VisCalc이라는 초보적인 스프레드쉬트 소프트웨어가 있었다.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였던 댄 브리클린은 회사의 재무 현황과 경영예상 표를 짜기 위해 그때까지 연필과 계산기를 사용했던 짜증나는 작업을 바꿔볼까 생각하다 애플 컴퓨터를 알게됐다. 그는 79년 셀 단위의 박스 속에 규칙적인 연산방식을 입력하는 최초의 써드파티 애플 컴퓨터 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벼락부자가 됐다. 필수 프로그램인 “Killer App”의 등장이었고 덕분에 애플 컴퓨터의 성공신화도 가능했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라는 시대를 앞선 컴퓨터 제작에만 몰두하다 왜 애플 컴퓨터가 성공했는가를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각기 다른 제조사의 컴퓨터를 위한 프로그램을 출시하면서 발빠르게 하드웨어 업체의 종속변수를 높혔다. 12살때부터 프로그래밍을 깨우친 게이츠는 컴퓨터에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깡통이란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애플과 IBM PC 에서 작동하는 프로그램들을 발빠르게 출시하면서 시장장악력을 극대화시키는데 몰두했다.

84년 잡스가 매킨토시를 출시하면서 개발자들을 위한 “Mac Basic”이란 프로그램 언어를 만들었다. 헌데 그때까지 애플 II 컴퓨터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 제공자였던 게이츠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자신이 개발자 언어를 책임질테니 애플은 빠지라는 것이었다. 아니면 애플 II에 제공되는 모든 프로그램을 폐지하겠다고 초강수를 둔것이다. 잡스는 당시 게이츠의 도발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요구를 들어줬다.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를 설립하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는 컴퓨터와 운영체제를 만들어 놓고도 5년동안 5만대뿐이 못판것은 비싼 이유도 있었지만 Killer App의 부재가 가장 컸다. 80년대 실리컨 벨리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컴퓨터 하드웨어 업체들이 빛도 못보고 사라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게다가 92년까지 업계 최대기업이었던 IBM까지 PC사업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기사회생하기 위해선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창조적인 제품개발도 중요하지만 제품의 판매를 위한 환경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또 더 중요하게는 90년대 중반 컴퓨터의 업계에 일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월드 와이드 웹(www), 인터넷의 출현이었다. 이제껏 연산기능(Computation)을 최우선으로 내세웠던 컴퓨터의 목적에 정보통신기능 (Communication)이 추가되는 흐름을 직시하고 있었다.

아밀리오는 애플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넥스트 운영체제를 인수하고 스티브 잡스를 다시 회사로 불러들였으나 애플의 적자폭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97년 봄 맥월드 컨퍼런스가 열릴 즈음 애플은 사상최고인 16억달러 적자를 기록했고 월가에서는 “6개월이란 애플의 시한부생명”을 예고했다.

아밀리오의 실패는 애플 내부의 잘못이기도했다. 조직이완 현상이 극에 달해 대표가 사인한 명령이 담당직원까지 하달되지 않는 사고가 빈번했다. 또 이사회는 계속해서 이룰수없는 합병의 꿈만 꿨다. 경영자와 이사진의 충돌은 자명했고 애플에는 극약처방이 필요했다.
애플 이사회 멤버중에는 85년 잡스를 내쫓은 주역들이 여전히 존재했지만 애플의 부활을 위해선 회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이끌어줄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다. 일부의 반대도 있었지만 그들의 중론은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 스티브 잡스 뿐이없다”였다. 여름이되자 이사회는 최악의 상황에서 아밀리오의 해임과 스티브 잡스의 대표 선임을 결정했다.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연설 말미에 잡스는 “거울앞에 서서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해야할 일을 끝낼 수 있을까”란 생각을 토로했다. “살아가면서 매일 그 날이 너의 마지막날이라고 생각한다면 제대로된 삶을 살아갈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아마 애플 대표직을 수락한던 날부터 전세계 최고의 회사를 만들기 까지 잡스는 거울을 보며 인생의 마지막날이란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 의해 잃어버린 점들을 다시 이어가길 소망했고 그 연결을 따라 벼랑끝에 선 애플 살리기 임무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준비된 CEO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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