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New World Order!

May 07,2012                      hit:(2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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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아이폰 판매가 시작됐다. 가격은 600달러. 당시 이동통신사의 데이터 통신망은 3G보다 5배가 느린 EVO 방식. 겨우 이메일 정도 주고받는 수준이었고 자유로운 웹서핑은 거의 불가능했다. 또 초기 아이폰의 불안정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인 자태와 우아한 UI 인터페이스의 유횩에 넘어간 소비자들은 “눈먼 사랑”에 빠져들고 말았다.

상황을 새롭게 인식한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발매 2개월만에 2백달러 인하를 단행했고 앞서 구매한 얼리어댑터들에겐 회사차원의 공식 사과문과 함께 1백달러 애플 스토어 쿠폰을 전달했다. 잡스 스스로도 아이폰의 인기에 놀랐다. 상상을 초월한 소비자 반응에 뒤늦게 생산라인을 늘려야했고 미래 시장 예측까지 새롭게 조명해야만했다.

놀란것은 잡스만이 아니었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든다고 발표했을 당시 “불행의 씨앗을 잉태”중이라고 전망한 IT 전문가 논객 집단은 예상과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자세였다.

6개월전 잡스가 맥월드 컨퍼런스 키노트에 등장해 호주머니속의 아이폰을 꺼내들고 새로운 스마트폰이 나올것을 예고했을때 실리컨 벨리 언론인들과 월스트릿 전문가, 그리고 스마트폰 경쟁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애플 비판론 일색이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논객은 마켓워치의 존 드보락기자. 그는 “한마디로 소비자 시장의 패턴에 역행하는 사업”이라고 했다. 그는 한발더나아가 “아이폰이 40분 이상 사용할 수 있다면 내 성을 갈겠다”고도 했다. 또 팜사의 에드 콜리건 CEO는 “애플은 스스로 무슨일을 벌이는지 알지도 못하고 있다”며 “스마트폰 시장 진입 선언이 돈을 벌게해주는 일이 아니란것을 깨닫게될 것”이라했다. 경쟁사의 원망은 그나마 얘교로 봐줄만했다.

실리컨 벨리의 테크 블로거 롭 인덜은 “사치품과 같은 고가 스마트폰 하나 때문에 아이들이 살해되고 여자들은 강간까지 당하는 사태가 몰려올 것”이라며 나오지도 않은 아이폰을 저주했다.

일간지 샌 호세 머큐리의 트로이 울버튼 오래전 “아이팟이 애플에 사형선고를 내릴것”이라했던 테크기자. 그는 컬럼을 통해 이번엔 “애플 아이폰이 아이팟의 팀킬 제품이 될 것”을 예상하면 그 이유로 “이제것 아이팟 경쟁제품의 성공사례가 없었다”는 것을 주장했다.
이처럼 아이폰이 출시되기도 전에 애플은 단지 새로운 제품을 선보인다는 이유때문에 논리도 없는 감정적인 비판을 감수해야했다. 하지만 아이폰이 출시되자 애플과 잡스에 대한 비판은 더더욱 거세졌다.

월스트릿저널은 그중에서도 가장 극한 비난을 퍼뭇고 있었다. “애플이 아이폰 사업의 실패를 숨기기위해 재고도 없으면서 1백만대 판매하겠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고 단언했다. 월가의 번스타인 리서치의 노티 사코나기 분석가는 “아이폰 사용자의 연간 비용이 1만7천6백70달러에 달한다”는 근거없는 소리까지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얘플이 수요예측을 잘못해서 “재고는 바닥이며 해본적없는 사업에 진출하므로써 생산라인까지 함께 불행을 초래하고 있다”고 분석글을 내놓고 있었다. 또 노무라 파이낸셜의 리처드 윈저는 아이폰의 터치스크린 방식에 대해 “발열에 감응하는 잘못된 설계방식으로 수백만대의 리콜이 예상된다”고 자신했다.

지금생각해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전문가 쇼”가 자행됐음에도 아이폰은 데뷔 첫 4분기만에 미국 스마트폰 시장 1위 블랙베리에 이어 단숨에 2위 자리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그것두 북미지역 AT&T 단일 이통사만을 통해 판매된 결과였다.

스마트폰 업계를 넘어 전체 이동통신 시장의 “뉴월드 오더”가 시작된 것이었다. 여전히 스티브 잡스의 예지력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전문가 집단은 2007년 겨울이되자 “애플 아이폰과 그 앱들이 독과점 지위를 꿈꾸며 자유시장 체제를 어지럽히고 있다 ”는 식의 논조로 방향을 바꾸었다. 존 드보락은 심지어 새롭게 창출되는 아이폰 시장이야말로 나치 치하와 다를바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돌이켜보면 왜 저래야만했을까란 자연스런 의구심이 치솟는것도 당연하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샌프란시스코의 IT블로거 대니얼 딜거는 “마이크로소프트 프레임에 갇힌 폐쇄적인 사람들의 본능”이라고 분석한다.

피씨 운영체제 윈도즈로 디지털 월드를 재패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 때문이란 그의 설명은 지극히 타당하다. 윈도즈 95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전세계 컴퓨터 시장 95%를 독식하는 체제를 완성했다. 이러는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경쟁자들의 시장진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전략으로 법원의 제재를 받기도했다. 실제 미연방검찰은 마이크로소프트 분할 직전까지 갔으나 소송진행 실수로 벌금형만 때리고 말았다.

이후 죽었다 살아난 마이크로소프트는 더더욱 독점적 관행을 굳혔다. 운영체제와 오피스 등 모든 자사제품을 번들로 묶어 판매해 경쟁사들의 설자리를 빼았고 이런 불공정 관행이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 길들여졌고 심지어 정당한 사업행위라는 믿음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비난의 화살을 피해갈 수 이었던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판매 전략이 소비자가 아닌 비지니스 업계를 타겟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 업계는 바로 제조사였다. 윈도즈 운영체제를 탑재해서 완제품 컴퓨터를 파는 제조사가 따로있었다. 오직 애플만이 윈도즈와 다른 자사 고유의 제품을 팔았을 뿐 모든 컴퓨터 제조사가 똑같은 붕어빵 컴퓨터를 상품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리컨 벨리에선 "수평적 관리 모델"이라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확대는 해서 더더욱 시장확대에 열을 올렸다.

이처럼 빌 게이츠가 제왕적 자리에 군림하는 사이 유일하게 경쟁적 위치에서 생존한 기업은 애플이었다. 5%의 미미한 컴퓨터 시장을 축으로 맥 컴퓨터를 보급했고 작지만 충성심 강한 소비자들의 중심에 스티브 잡스가 있었다.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와 달랐던 점은 분명하다. 애플은 “업계 표준”을 점령하기 위한 사업을 시도한 적이 없었다. 자신들이 만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고 판매했을 뿐이다.

이 때부터 논쟁의 핵심은 “수평적 분할 관리”냐 “수직적 통합 관리”냐 하는 디지털 업계의 팽팽한 이론 싸움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전자가 마이크로소프트 처럼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고 다양한 하드웨어 회사들이 제품을 만드는 방식이라면 후자는 제조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제품을 책임지고 만드는 애플만 방식이었다.

90년대 초반부터 컴퓨터 시장을 싹슬이 떠안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수평적 경영관리 이론은 수많은 신봉자를 양산했고 전문가들의 눈에 비친 애플의 도전은 한마디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사건일 뿐이었다. 더더욱 중요하게는 사고편리주의에 빠진 전문가 집단이란 사실이다. 문제의식이 없었으니 새로운 혁명적인 제품을 수용하기에 그들의 머리와 가슴은 너무나 비좁았던 것이다. 아이폰 출현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당혹감과 거부감으로 나타났으며 자신들이 무인도에 떨어져 홀로 외치는 상황임을 깨닫게해줬다. 아이폰은 이제 거스를수없는 대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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