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2.0] 10. 운명의 장난... pt. 2

July 02,2011                      hit:(3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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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젊은 날의 행적을 되짚어보면 의외로 단순하고 무모한 사람이란것을 쉽게 알수있다. 순수함과 강한 자아를 가진 잡스였지만 애플 창업 신화의 유명세를 타면서 성숙한 사람으로의 성장을 멈춘체 그는 괴팍하고 제멋대로의 무모함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며 살아왔다.

그런 잡스가 93년 매킨토시 개발을 함께했던 친구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진퇴양난이다! 진흙탕에 두발 모두 묶인 상황”이라고 고백했다. 넥스트(NeXT)와 픽사(Pixar)의 고전으로 호주머니가 바닥날 신세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흑백논리에 갇힌 아집 덩어리 잡스의 입에서 나온 말임을 감안할때 30대 후반에 들어선 그가 조금씩 스스로를 솔직하게 돌아볼 줄 아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디즈니와 픽사는 장편만화 제작을 계약했다. 제작비 일체를 디즈니가 부담하고 5년동안 3편의 장편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하는 일종의 하청 계약이었다. 단편적인 광고제작 수주로 연명하던 픽사로서는 제작비가 얼마가 들던 극장 수익의 12.5%를 가져가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사실 이런 계약 내용은 당시 할리우드 관행을 봐도 거의 노예 계약 수준이었다. 비디오/DVD 판권이나 캐릭터 및 2차 상품 판매권 모두 디즈니의 소유였다.

여전히 잡스는 픽사를 팔아치울 생각 뿐이었다. 잡스는 자신의 개인돈과 대출까지 합쳐 약 5천만달러를 픽사에 투입했고 적어도 그 정도 가격에 팔아야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사겠다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잡스의 생각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한것은 95년 1월. 디즈니 스튜디오의 연례행사이기도한 올해의 작품 발표회였다.  디즈니는 뉴욕에서 여름방학 시즌용 “포카혼타스”와 추수감사절용의 “토이 스토리”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잡스는 이때 할리웃 비지니스의 속성을 읽을 수 있었다. 워즈니악이 Apple I을 처음 만들었을때와 같은 소름 돋는 경험이었다. 그가 본 것은 블록버스터의 대박 흥행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피부로 느낀것이었다. 컴퓨터만이 사업이 아니라는 깨닫게된 것이다.

애플을 나온이후 수업료내면서 배운 "스티브 잡스 경영학 개론"에 최초로 피땀흘린 댓가의 기회가 열린 것이다. 동시에 그는 이번만큼은 제대로 해야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다름아닌 “성숙한 CEO”의 탄생이었다. 이전까지 자신이 손만대면 성공할 것이란 생각으로 일을 벌였다가 실패의 늪에 빠졌던 그였다.

뉴욕에서 돌아온 잡스는 픽사의 미래를  체계적으로 계획했다. 그때까지 픽사는 잡스의 취미였다. 그는 하루일과를 거의 넥스트 경영에 쏟아부었고 픽사는 앨비 레이 스미스와 에드 캣뮬 공동대표 체제로 일관했었다.

7년동안 픽사에 필요한 돈만 넣어주던 잡스가 스스로 픽사의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제일 먼저 재무담당 (CFO)을 스카웃했다. 애플에서 그랬던것처럼 언젠가 픽사의 기업공개를 이루기 위한 포석이었다. 또 회사의 조직을 재정비했다. 이미 하드웨어 부서는 모두 없앴고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인 "렌더맨" 프로그래머와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사이의 유기적인 조직을 구성했다.

잡스는 “토이 스토리”의 총제작자(Executive Producer) 직함을 추가하고 존 레세터를 총감독으로 승진시켜 모든 애니메이션 제작업무를 지휘토록 했다. 이런 잡스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직원들은 없었지만 앨비 스미스 부사장은 잡스에게 항상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두사람의 충돌은 시간 문제였고 결국 스미스는 “토이 스토리”의 개봉을 몇달 앞두고 회사를 떠났다.

흔들리지 않고 “토이 스토리”제작에 몰두하던 존 레세터는 제작진들에게 “컴퓨터 그래픽이 작품의 성공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라며 “탄탄한 시나리오와 독창적인 캐릭터 창출만이 살길”이라며 부하직원들을 독려했다. 또 제작 전과정에서 일일히 디즈니의 간섭을 받아온 레세터였기 때문에 더욱 독기를 뿜고  잘만들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95년 추수감사절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잡스와 레세터는 누구보다 긴장하고 있었다. 사실 너무나 새로운 시도의 컴퓨터 만화영화 였기에 시사회 때도 모두가 성공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디즈니의 전통적인 손으로 그린 만화에만 익숙했던 관객들이 실사와 같은 100% 3D 컴퓨터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이었다. 할리웃 기자들과 디즈니 내부에서 조차 반타작만해도 다행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날은 잡스의 첫 인생 반전드라마가 시작된 날이기도 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토이 스토리”는 그야말로 예상을 뒤엎는 대박 성공이었다. 개봉 첫 3일동안 2천8백만달러의 수익을 올리면서 제작비를 모두 회수했고 미국에서만 1억6천만달러의 극장수입으로 95년 할리웃 최고의 블록버스터로 올라섰다. 전세계 개봉을 이어가며 “토이스 토리”는 그때까지 디지니의 모든 장평만화 수익기록을 갈아엎으며 3억달러의 초대형 수익을 기록했다. 게다가 컴퓨터 혁명을 몰고왔던 잡스가 할리웃에 컴퓨터 그래픽 혁명을 일으키는 장본인으로 재부상했다.

뿐만아니었다. “토이 스토리” 개봉 1주일 후인 11월29일 잡스는 픽사의 나스닥 상장을 신청했다. 이날을 위해 준비했던 잡스였다. 주당 22달러로 공개한 픽사 주식은 49달러까지 치솟으며 95년 월스트릿 최고의 기업공개를 기록했다. 픽사는 하루아침에 4천7백만달러 적자회사에서 7천6백만달러 흑자기업으로 탈바꿈했고 잡스는 15억달러 돈방석에 앉았다. 애플에서 벌어들인 금액의 10배가 넘는 30대거부로 부활하며 두번째 상장 신화를 이룬 것이다.

토이 스토리의 성공신화는 96년까지 이어졌다. 잡스와 레세터는 당당하게 아카데미 시상식에 나타나 최우수장편만화영화상 거머쥐는 영광의 순간을 맞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낼 잡스가 아니었다. 오스카상을 손에 쥔 잡스는 숨고를 틈도 없이 곧바로 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즈너회장과 독대했다.

목적은  “재계약 협상.”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그는 아이즈너에게 재계약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5년뒤 디즈니를 떠나겠다고 당당하게 선제공격을 날렸다. 디즈니는 이미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미래가 열린것을 확신했고 새로운 트렌드를 치고 나가는데 픽사이외의 대안이 없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다. 잡스는 픽사가 제작하는 작품 총수익의 50대50 분배 및 애니메이션 작품 제작권 이양을 요구했다. 잡스는 또 픽사 작품엔 반듯이 픽사로고가 디즈니로고와 함께 등장한다는 것을 못박았다. 대신 아이즈너회장은 픽사와의 10년 계약에 5편의 장편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이런 내용을 뒤늦게 알게된 할리웃 관계자들은 경악을 금치못했다. 잡스의 협상력도 협상력이었지만 상대가 전세계 영화계를 쥐락펴락하는 아이즈너회장이었다는 사실에 더더욱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할리웃 최대 스튜디오 그룹 총수 마이클 아이즈너가 스티브 잡스에 무너졌다”는 헤드라인이 전세계 언론사를 통해 흘러나왔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실리컨벨리의 전문경영인으로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고 아이즈너회장의 생명이 10년 연장된 사건으로 보는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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