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2.0] 29. 애플 신화의 시작

March 24,2012                      hit:(3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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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지색 컴퓨터가 일색이던 PC 업계에 알록달록 사탕색 올인원 컴퓨터 iMac을 개발한다고 하자 모두가 실패할 것이라고 했다. 리테일 매장 사업계획을 발표하자 말도안되는 소리라는 조소를 들어야했다. 400달러짜리 MP3 플레이어 iPod를 만든다고 했을때도 회사 문닫으려 한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애플 컴퓨터사를 떠맡아 중요한 사업게획을 발표할때마다 스티브 잡스는 월스트릿과 실리콘 밸리 테크 언론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들어야했다. 잡스의 시도와 도전은 언제나 누구도 생각지 못한 것들이었고 그는 시도하는 사업마다 대박 성공을 이어가면서 보기좋게 비판론자를 잠재웠다.

픽사와 디즈니의 합병으로 디즈니 스튜디오 최대주주자리에 오른 그는 이미 전세계 최고 부자중 하나였다. 애플 대표로 취임할때만해도 파산일보직전이었지만 회사 정상화와 매출확대라는 두마리 토끼를 다잡은 21세기 경영인이었다. 더이상 오를 정상이 없을 듯 보이는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잡스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반항아” 또는 “이단아”란 딱지가 따라다녔다. 거친 입과 내맘대로 행보 때문이기도 했지만 주류 언론과 월가는 자신들의 기준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그를 부담스러워했다.

물론 잡스는 실리컨 밸리의 CEO들과 다른 사람이었다. 그가 입만 열면 열광하는 전세계 애플팬보이스들의 추앙을 받고 있었고 그들은 잡스와 함께 자랑스럽게 시대의 반항아가 되길 자처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까짓 컴퓨터와 MP3 기기가 뭐길래 그렇게까지 열광할까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2007년 텍사스 A&M대학의 미디어학과 하이디 캠벨교수는 종교처럼 번지는 애플 숭배 문화의 배경으로 “4가지 애플 전설론”을 정리를 했다. 1. 반문화적 정서를 품고 등장한 애플 컴퓨터와 매킨토시가 세상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창조적 전설.” 2. 상승일로의 PC 점유율 확장 속에서도 독식문화를 거부하는 “영웅적 전설.” 3.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를 골리앗으로 상징하는 “악마적 전설.” 4. 잡스의 귀환으로 쓰러져가는 애플을 되살린 “부활의 전설.”

이러한 전설론은 그 실체성을 따질 필요없이 애플과 스티브 잡스가 지구촌 비지니스 월드에서 왜 그토록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인가를 그대로 설명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단연 백마탄 기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암이 전이된 상황에서 수술을 받고 시한부 생명을 선고 받은 사람임에도 그는 애플 광팬들을 위해 자신이 여전히 더 해야할 일이 있다는 사명감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암수술을 받은 2004년까지 잡스는 애플의 회생과 정상화를 위해 집중해왔지만 암수술 이후부터 그는 애플이 FORD나 HP 처럼 시대를 상징하는 최고의 기업이 되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자 했다. 그래야만 자신이 애플 전설의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iPod의 성공은 그에게 새로운 목표를 제시한 사건이었다. 잡스는 애플을 운영하면서 틈새시장을 목표로 생존전략을 수행했다. 애플의 Mac 컴퓨터는 사용자 편리성이란 최고의 무기를 갖고 있었음에도 항상 특정 소수집단의 전유물처럼 인식됐다. 하지만 iPod의 성공은 그에게 매스마켓의 잠재성이 어떤 것인지를 새롭게 깨우쳐줬다. 또 매스마켓 성공의 결과로 애플 광팬들이 들불처럼 번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었다.

iPod이 MP3 시장을 석권할때쯤 세상에는 PDA(Personal Digital Assistnats)라는 초소형 컴퓨터가 출현했고 또 휴대폰의 저변화가 완료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호주머니 속에 iPod과 휴대전화 그리고 PDA를 함께 넣고 다니는게 이상한 일이아니었다.

언젠가는 이 세가지 기기가 하나로 통합돼야한다는 사실을 잡스는 잘알고 있었다. 또 iPod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새로운 발전된 모바일 기기의 출현은 필수적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게됐다. 때마침 Palm Treo와 블랙베리 등의 PDA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PDA와 휴대폰의 결합인 Device Convergence (기기통합)가 사실로 등장한 것이었다. 잡스는 새로운 눈높이를 가져야만 했다. iPod의 성공에 도취돼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PDA 스마트폰 기능에 순식간에 밀릴 수 있다는 절박감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PDA 폰들은 이동통신사의 망을 이용해 이메일과 인터넷이 가능하긴 했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한계로 극히 제한적인 사용만 가능했고 2004년 PDA 폰 시장 점유율은 3%미만이었다. 다만, 블랙베리의 경우 이멜 기능 하나로 기업시장 진출을 시작하면서 선전을 보여주고 있었다.

잡스는 비밀리에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을 모아놓고 브레인스토밍을 진행했다. 주제는 애플이 PDA 스마트폰을 만들면 어떤 방식이어야하는가였다. 잡스와 소수 엔지니어들만의 초극비 프로젝트였다.

또 다른 극복과제가 있었다. 애플이 만약 휴대폰 시장에 진출한다면 공룡과 같은 이동통신사를 상대해야하는 난제가 있었다. 휴대폰 제조사들에게 이통사는 “군림하는 주인”과 같은 격이었다. 노키아, 모토롤라, 삼성, LG 등 휴대폰 제조 대기업이 존재했지만 이들은 통신망과 가입자를 보유한 이통사들의 입맛을 맞추는데 급급했다. 얼핏 사용자들에게 수많은 피쳐폰의 선택이 있는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휴대폰 기능들은 이통사 맘대로 디자인된 것만이 존재했고 사용자들은 이통사의 횡포에 속수무책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애드 젠더 모토롤라대표를 찾아갔다. 2004년 모토롤라는 RAZR란 얇은 플립폰 디자인으로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을때였다. 젠더 대표와는 절친한 친구사이였기에 잡스는 애플의 강점인 iPod 기능을 모토롤라 휴대폰에 통합시키자고 제안했다. 휴대폰과 MP3 플레이어의 통합이었고 이런 방법으로 애플은 이통사를 직접 상대할 필요가 없었다.

2005년 모토롤라는 iPod 일부 기능이 탑재된 ROKR라는 휴대폰을 RAZR 후속타로 선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모토롤라와의 협엽은 애플로서도 참기 힘든 것이었다. 휴대폰 디자인은 차치하고라도 음원 디스트리뷰션이나 휴대기기의 저장용량 또 기기 명칭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애플은 단순히 ROKR의 소프트웨어 중 일부분을 제공했을 뿐이었다. ROKR의 실패는 사실 RAZR의 인기에 너무 취한 모토롤라의 오만함에서 비롯됐다.

스티브 잡스는 이때 결심을 굳혔다. 애플이 휴대폰 사업에 뛰어든다면 직접 애플만의 고유모델을 만드는 것만이 답이었다. 동시에 잡스의 특명을 받았던 극소수 엔지니어들은 쿠퍼티노 애플 본사의 비밀던젼에서 아무도 모르게 "P2" (Purple 2)라는 코드명으로 뭔가를 꾸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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