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비사] 마소의 1억5천만달러 투자, 그 진실은?

July 19,2009                      hit:(4185)

지난 97년 자금난에 허덕이던 애플이 최대의 적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억5천만달러를 투자받았습니다. 왜였을까요?

http://www.roughlydrafted.com/RD/RDM.Tech.Q1.07/592FE887-5CA1-4F30-BD62-407362B533B9.html
by Daniel Eran Di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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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애플은 아이폰의 성공과 매킨토시 컴퓨터, 그리고 스노우 레퍼드로 새로운 도약을 맞고 있습니다. 이를 지켜보는 경쟁자들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하면 같이 잘 나갈 수 있을까...아니면 제압할 수 있을까...이중 가장 예민해진게 '공룡기업'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상대가 안되는 회사한테 자꾸 발등 찍히고 있습니다.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애플이 그냥 놔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입체적인 공격이 준비중입니다. 1. 광고전쟁, 2. 리테일 스토어 경쟁, 3. Zune의 재무장, 4.윈도즈 7. 하나 하나의 전략이 애플의 숨통을 노리고 진행중입니다. 애플이 무섭게 컸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죠. 앞으로의 관전포인트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과거를 봐야 미래도 보일테니...다는 아니라해도. 제생각입니다...ㅋㅋ

지금까지 마소의 '행실패턴'으로 봤을때 경쟁자를 죽이는 것은 컴퓨터 오에스 개발보다 더 전문적입니다. "왜 죽일 수 있었을 때 애플을 죽이지 못했을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분명 90년대 후반, 마소는 애플을 죽일 기회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번 글은 얼마전 "애플의 부활"(http://x86osx.com/bbs/view.php?select_arrange=reg_update&desc=desc&id=freeboard&no=17319 )을 올렸는데 이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애플과 마소의 숨겨진 뒷얘기죠. 도데체 10년전 무슨일이 있었기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사망직전의 애플에 자금도 대주고, 공동 개발 및 크로스 라이센싱 계약을 했는지에 대한 숨겨진 비사입니다. 아무도 이전까지 심층취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구요. 이야기는 역시 Dilger의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2007년 3월 11일 올렸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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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7월 견원지간으로 알려진 컴퓨터업계의 최대 라이벌 애플과 마이크로소프가 충격의 '공동 파트너십 계획'을 발표했다.

1. 크로스 라이센싱 협약
2. 향후 5년동안 MAC 전용 Office 개발 계약
3. MAC 디폴트 웹브라져 Internet Exproloer 협의
4. 마소의 1억5천만달러 애플 주식 투자

업계 관계자 및 컴퓨터 사용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미스터리다. 이런 마소의 결정에 대해 가장 그럴듯한 소문이 하나 있다. 반독과점법 위반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던 마소가 자신들의 범행을 희석시키기 위해 내놓은 고육책이란 것이다. 이런 분석이 어느 정도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긴 했지만 애플과 마소 사이에 어떤 내용이 오고갖는지 누구도 알려하지 않았다. 아직도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일련의 논리적 접근을 통해 근접한 진실을 들춰볼 수 있을거 같다.

헛 소문

애빠가 있듯이 윈빠가 있다. 사실 더 많다. 평범한 윈빠 컴유저도 있지만 이들으르 상대로 여론몰이에 앞장선 먹물들이 zdnet.com, pcworld, computerworld 등에 포진해있다. 이 윈빠 기자들은 "컴퓨터에 대한 진정한 정열을 갖고있는 마소가 이타적인 결정을 내렸던 것"이라며 "재기에 성공한 애플은 이제 마소에 고마움을 표해야한다"고 까지 말한다. 마크 스티븐스같은 기자는 애플이 'RED BOX'(맥에서 모든 윈도즈 프로그램을 돌려주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윈도즈 코드를 빼내기위한 작전이었고 주장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은 또 돈이 다 떨어진 애플이 마소에 무릎꿇고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애플은 12억달러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마소의 1억5천만달러는 이중 겨우 10%가 조금 넘는 것이다. 마소가 컴퓨터업계에 정열을 갖고있다고라...? 지나간 그들의 행적을 볼때 이건 좀 아니다 싶다. 그렇다면 정말 검찰의 예봉을 피하기 위한 마소의 꼼수였을까? 1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의문스런 일이다.

의혹 투성이 반독과점 소송

연방공정거래위원회(Fair Trade Comminsion)와 20개주 검찰은 93년부터 공동으로 마소에 대한 반독과점법 위반 조사를 시작했다. 이들의 조사는 사무라이 칼처럼 무서운 것이었다. 이전에도 같은 사건이 있었지만 마소는 교활하게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마소가 더이상 법망을 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우선 마소와 단 한번이라도 거래했던 모든 컴퓨터 회사들이 마소의 험의에 대해 증인으로 출석하고 증거까지 들이밀고 있었다. (ㅊㅊ 못된짓만 골라했으니!) IBM, HP 등 하드웨워 제조사들은 마소가 윈도즈 이외의 운영체제 탑재를 방해했을 뿐더라 자사것만 사서 쓰라고 강요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 무서운 보복을 받게된다는 협박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또 Sun은 마소가 어떻게 Java를 죽였는지에 대해, 넷스케이프는 자사 프로그램 유통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마소의 통제를 받으면서 사장됐는지를 증언했다. 업계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던 마소가 경쟁사들을 상대로 어떤 짓거리를 하고 다녔는지 백일하에 드러났던 것이다.

과도한 증거

검찰측은 너무나 많은 증거를 확보하면서 고민에 놓이게 됐다. 케이스를 복잡하게 끌고가느냐 아니면 단순하게 가느냐, 선택은 후자였다. 검찰은 넷스케이프의 증언과 증거만으로도 충분히 소송승리를 낙관했고 따라서 케이스를 "PC Operating System 시장에서 벌어진 마소의 사업행위"에만 촛점을 맞췄다. 따라서 마소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불법적인 행위를 해온 다른 증거들은 법정에서 아예 채택되지도 않는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애플 또는 여타 하드웨어 제조사들과 마이크로소프트 사이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수면아래로 잠자게 됐다.

따라서 마소가 소송의 예봉을 피하기 위해 애플에 돈을 줬다는 얘기는 성립되지 않는다. 이미 애플은 법정에서 마소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5년 동안 조사만 지속돼던 이 케이스는 결국 98년에서야 정식 소송으로 전개됐다. 넷스케이프 사건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였고 마소는 피씨제조사와 맺은 Windows OEM 라이센스 계약 자체가 무효화될 수 있는 국면을 맞았다. 케이스를 담당했던 토머스 잭슨 판사는 마이크로포스트가 인텔 호환 데스크톱 오퍼레이팅 시스템 사업에서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고 시장을 맘대로 조정했으며 공정경쟁을 방해했다는 점이 인정돼 마소를 어플리케이션 개발 사업과 오퍼레이팅 시스템 사업을 나눠 분사시켜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이런 판결은 결국 상급심에서 마소에 보다 관대한 처분으로 바꿨다. 벌금형을 맞는 것으로 마소는 정말 죽었다 살아났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사실

마소가 새로운 버젼의 맥 오피스를 개발하고 1억5천만달러를 투자한다는 소식은 여전히 의문거리였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마소가 직면한 소송에서 애플이 전혀 상관없는 회사인데 도데체 마소가 얻는게 무엇인지 여전히 알수 없는 일이었다. 왜였을까? 또 당시 법원에서 공개된 빌 게이츠와 마소의 맥어플 개발 담장자간의 이멜에는 맥오피스를 만들면서 오히려 출시 시기를 늦추고 또 개발진행속도를 애플에 공개하지 않는 방법을 모색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의미인 즉, 맥오피스 개발이 마소에 주는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맥오피스 비지니스

97년 당시 마소의 맥용 오피스 4.2.1은 3년동안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고 이같은 이유때문에 전년대비 5천만달러의 판매수익이 사라졌다. 다른 경쟁자들이 맥플랫폼에서 선전하고 있었다. 맥플랫폼에서의 오피스 프로그램 시장규모는 약 1억5천만달러. Nisus, Claris, MS 그리고 여타 군소업체가 나눠먹는 시장이었다. 이 시장을 마소가 버릴 이유는 없었다. 또 마소는 이미 윈도즈 기반의 오피스 판매율이 정체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따라서 맥 플랫폼에서도 따 먹을수있는 시장을 가져오자는 의도가 있을법 했다.

1990년 전세계 피씨시장에서 애플의 점유율은 약11%. 96년엔 4.6%로 하락했다. 하지만 PC시장의 비약적인 성장이 있었기 때문에 애플의 점유율 감소가 판매실적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애플 시장의 총액규모는 오히려 더 늘었고 4.6%가 의미하는 금액은 마소에게도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이미 맥오피스를 출시하고 있었던 마소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가져가는 시장규모가 있었다. 또 마소는 의도적으로 맥오피스 업데이트를 미뤄왔고 이때문에 윈도즈 기반에서 오피스 성능이 뛰어나다고 비교될 정도였다.

파트너 협약

마소가 맥용 오피스 판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향후 5년 동안 맥 오에스 버젼이 바뀔때마다 맥오피스를 업데이트한다는 것은 별개일이며 마소의 관심일 수가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사실 하나! 마소는 맥오피스를 이용해 끊임없이 애플을 협박해왔다. 애플은 맥오피스가 절실히 필요했고 마소의 요구에 어느정도 부합하는 순한 양처럼 길들여져 있었다. 또 96년 한해 애플은 팔 억1천6백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마소는 애플측에 IE의 디폴트 브라우져를 요구했다. 독과점금지법 위반현의로 기소당한 마소가 이런 요구를 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마소가 연방검사의 기소자체를 우습게 봤다는 것 뿐이 달리 해석할 수 없다. 이런 조건속에서 왜 마소가 일방적으로 애플을 도와주는 공동개발 및 자금지원 협약을 한 것일까

과거에도 있었던 일

지금까지 마소가 왜 이처럼 애플에만 유리한 파트너협약에 사인을 했는지 그 논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더 찾아보면 이유가 보인다. 지금은 유야무야 사라진 일이지만 97년 시점으로 보면 양자사이에 '특허침해소송'이 진행중이었다.

두 회사사이의 특허소송은 이전에도 있었다. 88년부터 94년까지 이어진 특허소송은 애플의 존 스컬리 책임하에 발생한 일이다. 자신을 스카웃했던 잡스를 내쫓고 경영책임자에 오른 스컬리는 88년 마소를 상대로 윈도즈가 맥오에스를 카피했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다 아시다시피 애플의 참패. 잡스를 내쫗은 이후 특허의 특자도 몰랐던 애플 경영진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맥용 어플 공급계약을 맺으면서 맥의 GUI 인터페이스를 써도 좋다는 허술한 내용에 사인을 해버렸고 이런 계약서를 바탕으로 마소는 윈도즈를 개발했던 것이다.

사태를 제대로 직시하지 못했던 스컬리는 오히려 마소와 프로그램 사업부분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소송에서 이기면 모든것을 되돌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안이한 경영을 몰고갔다. 결국 90년대 이르러 애플은 비참한 결과를 맛봐야했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초까지 맥은 사실 여전히 선전하는 컴퓨터였다. 시장은 열려있었고 애플 하기 나름이었다. 절대 마소의 독주체제가 아니었다. 이때 마소는 오피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시장을 공략했다. 스컬리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팔아준다'는 업계 생리를 깨닫지 못했다. 더 중요하게는 애플이란 회사가 하드웨어 뿐만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갖고 있는 회사임을 스스로 알아채질 못했다. 스컬리는 애플에 존재해온 Lisa Office Suit 프로그램의 최적화 작업을 철저히 외면했다. 또 컴팩이나 HP처럼 하드웨어 제조에만 급급했고 마소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결국 마소와의 첫 특허침해소송에서 패한 애플은 자사의 모든 개발제품에 특허등록을 재정비했다. 그중 하나가 퀵타임이었다. 이전에도 얘기했지만 퀵타임은 업계를 선도할 수 있는 웹기반 비디오 플러그인의 대표적인 기술이었다. 마소가 이 퀵 타임을 죽이려고 온갖 짓을 다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해도 안되니까...결국엔 훔쳐냈다.

정신차린 애플

잡스의 애플 복귀는 우연이었다. 천문학적인 손해를 보고있던 애플 이사회는 경영을 맡길 인재를 찾아 나섰다. 침몰하는 배에 올라탈 바보 선장은 별로 없었다. 결국 자신은 쫓겨났지만 자나깨나 애플걱정만 하던 잡스를 붙들었다. 경영을 맡아달라는 제의도 아니었다. 그냥 대표를 뽑는 일과 제품 개발부서의 일을 도와달라는 것. 잡스의 애플사랑은 자신의 감정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애플을 위해 경영자를 찾아나섰다. 처음엔 그냥 애플 컨설턴트란 명함을 들고 다녔다. 6개월이 지나도 대표적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잡스는 개발부서를 독려하면서 새로운 제품 디자인에 모티브를 설정했다. 그때까지도 잡스는 애플의 재무구조나 자금흐름의 정보에 대해선 철저하게 따돌림 당했다.

결국 애플을 맡아줄 대표자가 나타나지 않자 이사회는 할 수 없이 차선책으로 잡스에게 한시적인 "Acting CEO"를 맡아달라고 했다. 이때 잡스가 왜 "연봉은 1달러면 족하다"고 했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잡스가 마지막으로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바로 치사한 사람들로부터 돈받고 일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자기를 쫓아낸 회사로부터 다시 대표를 맡아달라는 제의도 아니고 할 사람이 없으니 당분간 서리로 일해달라는 제의를 이렇게 받아들였던 잡스였다.

잡스는 복귀하자 마자 마소를 상대로 진행되는 퀵타임 관련 특허침해소송을 진행했다. 이미 애플에는 냉전시절 미국과 소련이 만든 핵탄두만큼의 특허를 보유했고 이런 지적자산을 지키기위한 첫 수순으로 마소를 소송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캐년 컴퍼니 스캔들(SanFrancisco Canyon Company Scandal)

샌프란시스코 캐년 컴퍼니(SCC)는 웹개발 회사였다. 애플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비디오 가속기인 퀵타임 코드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회사와 애플과의 개발 관계는 끝났다. 헌데 윈미디어 플레이의 개발에 실패를 거듭하던 마소가 SCC를 알게됐다. 마소를 대리해서 인텔이 나섰다. 인텔은 SCC에 접근해서 퀵타임 관련 코드를 빼내도록 작전을 짰다. 인텔이 마담뚜로 등장해 SCC로 하여금 윈미디어 플레이어 개발 계약을 맺었고 무슨 코드를 쓰던 괜찮다는 언질을 준것이다. 전후맥락을 모르는 SCC 는 아무 생각없이 퀵타임 코드를 재사용했다. 결과적으로 떡밥을 문게 마소와 인텔이었고 애플은 두 회사를 동시에 고발했다. 퀵타임코드를 빼돌린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지만 마소와 인텔은 지들이 모르는 가운데 SCC 가 한거라고 발뺌하는데 급급했고 인터넥 익스플로러의 비디오 플러그인 기능은 다시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실리콘 벨리의 코미디였다. 업계 두 공룡이 자작극을 펼치다 걸렸으니...이미 SCC 엔지니어가 퀵타임 코드 사용을 인정했고 그 배후가 인텔 마소였다고 했다.

당시 반독과점소송을 빠져나갈 길이 안보였던 마소는 애플과의 특허침해소송에서도 빠져나갈길이 없어 보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돈줄의 진실

마소가 애플에 1억5천만달러의 투자 결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놀랬다. 하지만 애플은 97년 12억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마소의 투자는 큰 금액이 아니었다. 애플의 전년도 손실액이 팔 억5천만달러였다. 손실금중 6억달러는 잡스가 세웠던 NeXT 인수자금으로 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억 현금을 보유했다?

애플은 그 현금의 출처가 가지고 있던 ARM사의 주식을 팔아 생긴것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ARM사 지분을 판것은 98년. 이런 가운데 한 소문이 흘러나왔다. 마소가 애플에게 특허침해소송 무마 댓가로 수년에 걸쳐 최소 5억에서 최대 20억달러를 지불하기로 했다는 소문이었다.

마소의 전력

마소는 특허침해소송으로 수차례 그 댓가를 지불해왔다. 굴직한 것만 살펴보자:

1. IBM의 OS/2와 Lotus SmartSuite 관련 특허침해 소송으로 7억7천5백만달러 지급 합의.
2. Novell의 Netware관련 반독과점위반소송으로 5억3천9백만달러 합의.
3. WordPerfect 제기한 반독과점위반소송은 지금도 진행중.
4. Palm이 제기한 BeOS 관련 반독과점소소엥서 2천3백만달러 합의.
5. Sun이 제기한 반독과점소송으로 7억달러 벌금과 Java특허도용으로 9억달러 합의.
6. AOL 넷스케이이프관련 반독과점위반으로 7억5천만달러 합의.

세상의 컴퓨터사용자들이 마소의 윈도즈에 지불하는 금액이 천문학적이라 이런 규모의 합의금과 벌금을 내도 마소는 끄덕없다. 훌륭한 기업이다!

가장 나쁜 친구이자 가장 좋은 친구?

마소가 애플에 특허침해 소송 무마 조건으로 20억달러를 줬다해도 놀랠일이 아니다. 당연히 97년 애플과 마소의 파트너 협약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있었다. 다만 애플이 마소의 자존심을 세워줬다는 정도로의 해석이 가능하다. 98년 잡스가 호스트를 맡았던 맥엑스포에 빌 게이트가 화상으로 등장해 "함께 잘 놀아보자"했던게 결국 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전에 언급했지만 애플의 반격은 아주 작은곳에서 시작됐다. 죽을 수도 있었던 애플이 퀵타임과 파이널 컷 프로의 선전으로 기사회생했고 마소의 백기항복으로 자금줄을 확보했다. 잡스는 재정적인 토대를 만들고 이어 사탕색 매킨토시의 재구성, 아이팟과 아이튠의 성공, 레퍼드 출시, 인텔맥으로의 전환 그리고 아이폰 성공으로 회사를 이끌었다. 동기간 애플은 창사이래 마소와 돈독한 밀월관계를 가져왔다. 바로 얼마전까지....

10년이 흐른 현재 애플과 마소는 여전히 친구인가? 절대 아니다. 둘 사이에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으로 이번 글을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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