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잡스 2.0] 4. 만우절의 사나이!!

April 10,2011                      hit:(4262)

지난주 4월1일은 만우절. 촌철살인의 조크로 가볍게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날이지만 적어도 지구상의 한 사람만은 그럴수 없는 날이다.

도박 천국 네바다주에서 라스베가스나 리노도 아닌 파럼프라는 썰렁한 소도시의 구질구질한 카지노에 틀어박혀 하루를 소일하는 론 웨인(77). 요즘엔 특히 더 이날이 싫다. 35년전 만우절 그는 20대 초반의 두 젊은이와 함께 신생 컴퓨터 회사를 창업했다. 당시 8백달러를 투자하면서 10%의 지분을 가졌던 웨인은 12일 만에 투자금을 회수하고 회사를 떠난다. 자금도 없이 컴퓨터를 개발하겠다는 두 젊은이의 야심이 무서웠던게 아니라 겂도 없이 대출부터 받아 사업하겠다는 발상에 가슴이 내려앉았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운명의 여신은 일생일대의 신중한 결정을 내린 웨인의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만우절만 되면 웨인과 함께 회자되는 말이 바로 “What if?”다. 웨인이 포기한 10%의 지분을 지금 싯가총액으로 환산하면 약 3백억달러. 그가 포기한 회사는 지구촌 최고의 테크회사 애플 컴퓨터. 당시 그와 파트너 관계였던 창업자는 바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다.

“두 사람의 배짱에 겂이난것은 아니다. 창업멤버중 재산을 소유했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만약 회사가 잘못되면 내 소유물로 차압이 들어올 것은 자명했다”는게 웨인의 변이다. 삶의 법칙이 돈으로 결정나는것은 아니지만 웨인을 두고 지구상 가장 불운한 사나이라는 딱지는 너무나 당연하다.

세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어거지로 얻어낸 잡스의 첫 직장 아타리에서 부터다. 웨인은 76년 비디오 게임사 아타리의 중견엔지니어로 제품 디자인을 문서화하는 draftengineer. 거지꼴을 하고 회사를 누비는 잡스와 밤이면 몰래 회사에 들어와 공장을 살펴보던 워즈니악을 눈여겨보던 웨인은 두 젊은이를 어떻게 도울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사마리탄이었다. 게다가 웨인의 취미가 바로 컴퓨터였고 당시 스탠포드대학의 아마츄어 컴퓨터 동호회 Homebrew Computer Club의 회원이기도 했다.

이 동호회에서 누구보다 앞선 기술의 컴퓨터 보드를 들고나와 사람들을 놀래켰던 워즈니악을 기억했던 웨인은 잡스와 함께 자연스럽게 친구가됐다. 컴퓨터 키트(76년 당시 완제품 개인컴퓨터는 존재하지 않았고 부품을 조립해서 간단한 디지털 명령어 수행을 테스트하는 수준의 키트)를 만들어 팔면 돈을 벌 수 있다고 떠든것도 잡스였고 회사를 만들자고 바람잡던이도 바로 잡스였다.

실질적인 컴퓨터 디자이너 워즈니악은 잡스의 창업 아이디어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당시 실리컨벨리 최대 회사인 HP의 엔지니어였고 아버지 처럼 HP를 평생직장으로 여기며 은퇴를 꿈꿨다. 컴퓨터 개발의 꿈을 갖고있던 워즈니악이 HP 간부에게 개발계획을 알렸지만 일언지하에 거부당한 일화는 유명하다.

잡스는 집요하게 워즈니악을 설득했고 공작이 먹히지 않자 그의 아버지까지 설득해 지원사격을 당부했을 정도였다. 잡스의 생각은 단 하나. “나이가들어 젊은 날을 회고하면서 적어도 우리 둘이 회사를 창업했었다는 이야기를 손자들에게 해주자” 것이었다.

갈팡질팔 오리무중의 워즈니악은 웨인을 만나면서 맘이 움직였다. 웨인은 사업의 ‘사’자도 모르는 두 젊은이들에게 20년 연장자로서 사업 방법에 대한 훈수를 뒀다. 순간 워즈니악은 웨인이야 말로 자신들을 이끌어 줄 사부님이라고 여겼다. 결국 잡스의 창업아이디어에 동의했고 세 사람은 잡스 집 차고에서 애플컴퓨터를 세웠다. 정말 만우절과 같은 창업이었다.

워즈니악 자서전을 들춰보자. “잡스가 회사를 만들자고 했을때 웨인을 만났다. 그는 우리가 모르는 모든것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정말 놀라웠다. 더욱 중요한것은 연장자였던 웨인이 우리 둘사이의 심판 역할을 맡았다. 내가 컴퓨터 설계를 위해 차고에 있는 쪼가리 회로기판을 들고 집에가서 일한다고하면 잡스는 여지없이 ‘애플 컴퓨터의 재산을 맘대로 갖고 나가선 안된다’는 식이었다. 잡스의 어거지 생떼에 짜증이 날때면 단연 웨인이 중재에 나섰다. 잡스와 내가 충돌하는 것을 보면서 웨인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비슷한 일화가 떠오른다. 20대의 세르게이 빈과 래리 페이지가 인터넷 검색엔진 회사인 구글을 창업한 후 “연장자의 지도”(Adult Supervision)가 필요하다고 느껴 에릭 슈미츠를 영입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실리콘 벨리의 최초 벤처 신화의 주인공인 잡스와 워즈니악 역시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웨인의 역할은 사실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준과 같았다. 웨인은 “세사람이 모여서 컴퓨터 개발을 논의하며 회사창업이 필요하다고 한것은 바로 나였다”고 말한다.

애플 컴퓨터로 회사명이 정해지자 웨인은 뉴턴이 사과나무 밑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림의 회사로고를 만들었다. 사실 회사 이름도 세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했지만 딱히 떠오르는게 없자 채식주의자였던 잡스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사과를 회사명으로 하겠다고 했다. 웨인은 로고 이외에도 운영계획서, 파트너 지분 계약서, 그리고 애플 컴퓨터 최초의 매뉴얼을 집필했다. 세사람의 사인이 들어간 서류를 손에 들고 직접 애플 컴퓨터 설립 신청을했던 사람도 바로 웨인이었다.

자본금 2천8백달러. 잡스는 자신의 폴크스바겐 밴을 팔았고 8백달러는 웨인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워즈니악은 오로지 기술만을 갖고있었다. 회사가 만들어지자 마자 잡스는 세일즈에 나섰다. 샌프란시스코와 샌호세 인근 컴퓨터 애호가들이 자주 출입하던 전자부품센터 Byte Shop을 혼자 찾아간것도 잡스였다. 그는 워즈니악이 개발한 초보적인 컴퓨터 보드 키트를 주인에게 보여주면서 완성된 컴퓨터를 공급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2시간에 걸친 구라작업 끝에 잡스는 생애 첫 비지니스딜을 성사시켰다. 50대의 주문을 받은 것이다.

문제는 부품조달. 최소 2만달러가 필요했다. 방법이 없었다. 차고속에서 세사람의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잡스가 말문을 열었다. 다시 Byte Shop주인을 찾아가겠다는 것이었다. 방금전에 제품공급 계약을 맺었던 주인장에게 부품을 선공급해달라고 청했다. 1만5천달러어치였다. 5천달러가 더 필요했다. 이번엔 은행을 찾아가 공급계약서를 보여준면서 5천달러를 대출받았다.

이처럼 일사천리에 자금문제를 해결하는 잡스를 보면서 웨인은 경악했다. 잡스의 수완에 놀랬고 이후 실패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면서 놀랬다. 그는 또 Byte Shop 주인이 돈을 제때 지불하지 않는다는 소문까지 들었던 터였다.

지난해 샌호세 머큐리지와의 인터뷰에서 웨인은 “애플컴퓨터가 성공할 회사란 것은 알았지만 그러는 과정속에서 문제가 생겨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니 결정은 쉬웠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 창업 12일만에 회사를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로부터 1년후 잡스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았다. 8백달러 투자금에 1천5백달러가 더해진 수표와 함께 애플 컴퓨터 주식회사에 대한 모든 지분을 포기한다는 각서가 들어있었다. 웨인이 받은 2천3백달러를 애플 주식으로 따지면 1백만주에 달한다.

먼지나는 파럼프 트레일러 파크의 모빌홈에서 기거하는 웨인은 현재 정부연금으로 살고 있다. 38구경 총한자루를 준비한것도 혹시나 도둑이 들까봐서다. 하지만 현재에 만족한다.

“지나간 일 생각하면 무엇하나. 그때의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다.”

comment : (1)

128bit   2011/04/12 07:43 [delete] Reply
그쵸.. 지난날 후회해 봐야....
그런식으로 따지면.. 엊그제 팔았던 주식이 폭등한다던지...하는일은 부지기수니까요...
물론 금액이 천문학적으로 차이나지만;;;
확실히 돈이 많아야 행복한건 아니니까요...

물론 저라면 잠은 못자겠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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