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따라잡기 2…"운7기3"

November 02,2009                      hit:(4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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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패를 돌리다 흔히 하는 말중에 "운7기3"이란 말이 있죠.^^ 굳이 해석을 달자면 능력만 갖고 안된다는...운이 따라 줘야…"새"도 잡고 "고"도 부르고 "피박"도 씌우고…ㅋㅋ
지난번 "황소고집" 이야기 (http://x86osx.com/bbs/view.php?select_arrange=reg_update&desc=desc&id=freeboard&no=22192 )에 이어 재밌는게 뭘까하다…이번엔 실패와 행운의 연속으로 이어지는 드라마틱한 인생 속에서 어떻게 잡스의 성공가도가 열리기 시작했는지 살펴보고 싶어졌습니다.

잡스와 애플의 성공을 여기서 다시 얘기할 필요는 없겠죠. 2009년 현재 컴터 시장점유율 10%가 채 못됩니다. 인터넷 사용 오에스로 보자면 레퍼드와 스노우 레퍼드 합친 수치가 5% 조금 넘어갑니다. 이에 비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자랑스런 오에스 장착 컴터의 시장점유율은 전세계 90%가 넘고, XP, Vista, Windows 7을 합친 인터넷 사용 오에스에서는 94%가 넘습니다. 이처럼 게임이 안되는 숫자를 보이지만 회사 수익률에서는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전세계 최대 기업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하지만 경기침체의 와중에도 두자리수 성장세를 보이는 애플. 빚 한푼없는 애플이 3억2천만달러로 아이티업계 최대 현금 보유회사이며 시가총액으로 따지면 구글을 넘어서 아이티업계 2위이자 2-3년내로 마소를 따라잡는다고 합니다. 물론 컴터만이 아니라 이젠 아이팟, 아이폰, 아이튠스 등으로 이런 자리에 오른 것이죠. 애플은 기술과 디자인 그리고 마케팅 분야에서 아이티 업계를 선도하는 회사입니다. 그 성공의 열쇠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함 열어보죠.

잡스에게 두번째 행운은 NeXT 컴퓨터 회사를 창립한 87년에 찾아왔습니다. 창업자에서 실패자로 전락한 잡스가 절치부심, 애플을 망하게 만들기 위한 복수심에서 NeXT를 창립했습니다. 이때 로스 페로라는 재벌이 잡스의 이름만 믿고 선뜻 2천만달러의 엔젤 투자를 결정하죠. 물론 잡스도 자기돈 1천만달러의 시드머니를 넣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돈 갖고 IBM과 애플을 따라잡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때 일본의 캐논이 1억달러를 쾌척합니다. 모두 눈먼 돈이었습니다. 정확하게 잡스가 어떤 인물이고 왜 애플에서 추방됐는지를 모르는 가운데 단지 컴퓨터 업계의 "신세대 경영인" 그리고 "매킨토시 창조자"란 화려한 형용사에 눈이 멀었던 것이었죠…ㅋㅋ 페로와 캐논이 조금만더 파고들었다면 잡스에게 그런 돈을 맡기지 않았을겁니다. 하지만 잡스는 적어도 투자가들에게는 신세계를 다시 한번 열어 줄 리더였습니다.

익히 알려진 말이있습니다. "Reality Distortion Fields"라고…잡스가 주장하는 말을 엄밀하게 보면 말이 안되는 내용이지만 그가하는 말을 면전에서 듣게되면 안믿을 수 없게 만드는 재주죠. 제품이나 소프트웨어의 완성일자를 제시하는 잡스의 주장이 도체 상식이하의 말이지만 듣다보면 고개를 끄덕이는 엔지니어들이였답니다. 엔지니어출신도 아닌 잡스가 사람들을 자기 기술력으로 설득하는 재주야말로 "성공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아닐까 합니다.

잡스는 중학생시절 스스로 부모를 설득해 이사를 결정하고 학교를 옮겼습니다. 당시 스티브 워즈니악 수준은 아니었지만 잡스 역시 라디오라던가 조악한 전자기기 만드는 취미에 빠져있었습니다. 공부하곤 담을 쌓고 말수없는 조용한 학생이었던 잡스가 학교에서 가장 흥미를 가졌던 분야였죠. 어느날 과제물로 라디오 기기를 만들려 했던 잡스는 모두가 그저그런 비슷한 류의 조립품을 만들고 있었을때 자신은 몬가 좀 다른 것을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헌데 아이디어만 있고 이를 완성시킬 부품이 없었다죠. 그런것들 살 돈도 없었고… 과제물 제출 시간이 다가오자 한 친구가 잡스에게 어캐되가냐고 물었을때 잡스는 큰 소리쳤답니다. "내가 만들 기기는 휴렛 패커드사(지금의 HP)에서 부품을 대줄것"이라고. 잡스는 며칠 후 진짜로 남들이 만들지 못한 더 화려하고 파워풀한 라디오를 만들어왔답니다. 놀란 친구가 어캐된거냐고 다시 물었죠.

잡스왈! "엉…미스터 패커드사장이 직접 부품을 대줬지."

잡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당시 쿠퍼티노 옆동네가 팔로 알토스 (Palo Altos)로 지금의 실리컨 벨리지역입니다. 이 곳에서 가장 큰 회사가 전자계산기 만들던 휴렛 패커드였고요. 전화번호부를 들춰본 잡스는 거기서 미스터 휴렛 패커드의 전화번호를 파악하고 곧 바로 전화를 걸었답니다. 물론 비서를 거쳤겠죠. 하지만 워낙 말빨이 좋아서 문제없이 패커드 사장에게 연결이 이뤄줬습니다. 잡스는 자신이 얻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았습니다. 패커드사장과의 직접 통화를 통해 자신이 하고자하는 일이 무엇이고 왜 휴렛패커드사의 부품이 필요하고 그렇게 해줄 경우 어떻게 학생들이 도움을 받을 지를 논리정연하게 이야기 했답니다. 이 말을 들은 패커드사장은 두말없이 "오케이"라고 했습니다. 잡스는 자기가 무슨짓을 한것인지 잘 몰랐답니다. 하지만 집으로 배달온 휴렛 패커드사의 부품"을 받고서야 놀랐다고 합니다. 배짱 하나 정말 대단했습니다.

NeXT는 역시 잡스의 제품처럼 우아한 디자인에 혁신적인 유닉스 기반의 오에스를 탑재해서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애플에서의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었습니다. 젤 큰 실수가 "자신이 만들면 누구던지 사갈것이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잡스는 부단한 세일즈 노력을 기울였죠. 그래서 병원 등과 같은 특수 기업들의 고객을 확보했고 나중엔 CIA (중앙정보국)에까지 납품하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매스마켓을 뚫지는 못했습니다. 거의 돈이 바닥났을때 투자실패를 두려워한 캐논이 1억달러를 추가 투자했지만 그 역시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94년은 잡스에게 최악의 해였습니다. NeXT가 망해가고 또 자신이 인수한 Pixar 역시 돈만 먹는 회사였습니다. 애플서 추방됐을때 잡스는 자신이 갖고 있던 주식을 모두 팔아 1억달러 정도를 손에 쥐고 있었는데 Pixar에만 6천만달러를 투입했습니다. 이쯤해서 잡스는 고민을 해야했습니다. 두 회사를 포기하고 남은 돈을 갖고 가족과 함께 안정적으로 살것인가 아니면 게속해서 사업을 할 것인가. 아마 잡스가 성숙한 때가 이때가 아닌가합니다.

"iCon"과 "Second Coming of Steve Jobs"란 책에선 당시 잡스가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가 "또 다시 실패했다는 남들의 인식을 거부하는 고집과 자존심 때문"이라고 평가하더군요. 하지만 또 다른 책 "Inside Steve's Brain"에선 좀 다릅니다. 저 역시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잡스가 고집스럽고 못됐고 성숙치 못했던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무엇을 하던 새로운것을 하고자했던 그 의지는 일반사람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94년 잡스는 중대 결정을 내렸습니다. NeXT의 하드웨어 부서를 정리하고 운영체제만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또 Pixar는 회사 창립이래 최대 감원을 단행했습니다. 픽사는 에니메이션 회사였지만 사실 "컴퓨터 에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전용 하드웨어/소프트웨어까지 개발해놓고 있던 회사였습니다. 잡스는 픽사를 인수할때 에니메이션의 히트를 예감한것이 아니라 바로 이 그래픽 전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탐냈던것이었죠. 픽사에서 개발했던 그래픽 소프트웨어 "RenderMan"은 당시 유일했던 컴터 에니메이션 어플이었습니다.

잡스의 계속되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판매전략이 실패에도 불구하고 픽사의 컴퓨터 에니메니션, 특히 숏스토리 작품들은 할리웃에 감명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여기에는 디즈니에서 해고당하고 낭인 생활을 하던 John Lessetter란 천재 만화제작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픽사는 잡스에게 돈을 벌어다주진 못했지만 잡스의 이름이 계속해서 미국언론에 등장하게 만들어준 회사였습니다. 잡스는 결국 픽사의 대대적인 감원과 하드웨어/소프트에어 판매 축소를 단행했지만 존 레세터를 위시한 에니메이션 제작팀에게는 계속해서 자기 돈을 대주었습니다. 망하지 않길 기도했겠죠.

헌데 잡스의 운이 바닥을 치면서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대의 미디어그룹 디즈니의 연락을 받은거죠. 당시 몬가 새로운 작품을 필요로했던 디즈니가 픽사의 에니메니션 팀장이던 존 레세터의 재능을 높이샀기 때문에 픽사와 5년동안 3편의 컴퓨터 만화영화 제작과 제작비 일체를 지불하는 계약을 했습니다. 꺼져가던 불씨에 불이 다시 붙은거죠.

잡스의 이름이 이번엔 할리웃 미디어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그리고 1년후 픽사는 "토이 스토리"를 선보이며 만화영화사상 최대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운이란게 이어지는 속성이 있나봅니다. NeXT에서 죽을 쑤던 잡스에게 애플의 신참 CEO 길버트 아멜리오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96년 당시 애플은 최대 적자를 기록하면서 거의 망해가는 모습이었습니다. 1년전 아멜리오가 CEO로 취임했을때 월스트릿 전문가들은 애플이 6개월내 파산할 것이라고 했답니다. 아멜리오가 애플에 대수술을 가해 명맥을 이어가게 만든 공은 지금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다만 애플에게는 새로운 운영체제가 필요했고 당시 선택은 BeOS로 기울어져있었습니다. 하지만 BeOS가 애플용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얼마나 더 기달려야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죠. 대안으로 떠오른게 이미 완성된 NeXT였습니다. 것두 잡스의 아이디어가 아니었습니다. 잡스의 부하직원이 새로운 오에스를 찾는다는 애플에 참조하라고 말하면서 시작해 물밑 작업이 진행됐죠. 첨부터 잡스가 알았다면 "노"했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하지만 픽사의 성공으로 새로운 눈을 뜬 잡스는 더이상 과거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NeXT를 애플로 넘기기 위해 잡스는 아멜리오를 집으로 초대까지 했습니다. 간단한 인삿말을 나눈 두 사람은 잡스의 제안으로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잡스는 청바지에 맨발이었습니다. 아멜리오는 "딱, 잡스의 키노트를 연상하면된다"고 당시를 말합니다. 잡스는 왜 애플에게 NeXT가 최적의 조건인가를 설명하고 NeXT를 넘기는 최소한의 조건과 그에 대한 이유를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아멜리오를 설득했답니다. 아멜리오는 잡스의 첫 만남에서 모든걸 잡스가 원하는대로 사인하겠다고 약속했죠. 잡스가 워낙 명확하고 거부할 이유가 없는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에 밀고당기고하면서 시간 끌 필요가 없었다는 거였습니다. 잡스는 4억2천만달러에 NeXT를 애플에 넘깁니다. 이로써 잡스와 로스 페로 그리고 캐논은 모두 투자한 돈을 회수하고 약간의 이익금까지 벌었습니다. 특히 이때 NeXT에서 잡스와 함께했던 엔지니어들도 상당한 금액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아멜리오는 훗날 그날의 미팅을 회고하면서 "성숙한 잡스와 애플 창업자 잡스를 동시에 봤다"고 말합니다.

아멜리오는 이후 애플의 생존을 위해 많은 일을 했습니다. 가장 큰 일이 자금비축이었죠. 하지만 전임자가 단행했던 맥 클론 제품이 애플의 재앙으로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순 없었습니다. 자금여력을 확보했지만 회사 매출은 맥 클론 제품으로 인해 날개없는 추락 상황이었으니까요. 95년까지만해도 애플은 IBM 다음으로 세계 최대 컴퓨터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96년 맥클론이 퍼지면서 한해 6천7백만달러의 손해를 보게됩니다. 아멜리오가 망해가는 애플의 내부수술을 단행해 성과를 올리긴 했지만 외과수술에 실패해서 결국 사임하게됐죠.

잡스와 애플의 부활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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