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2.0]  13. “오케이, 아밀리오!”

August 13,2011                      hit:(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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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 겨울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대성공으로 실추된 자존심 회복과 10억달러 이상의 부를 축적했다. 더이상 바랄게 없었다. 얼핏 찬란한 96년을 맞고 있을 잡스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왠지 가시지않는 응어리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넥스트의 실패를 인정하기엔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잡스는 500명에 달했던 넥스트 직원중 300명을 내보냈다. 하드웨어 부서를 없애고 그토록 자랑하던 100% 무인 로보트 제조공장은 캐논에 넘겼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만 남기고 후사를 도모하자는 생각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언젠가는 넥스트 운영체제를 라이센스화시키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즈 천하였다. 그 정점에 빌 게이츠가 우뚝 서있었다. 퍼스널 컴퓨터 혁명에 불을 지핀 장본인은 잡스였지만 컴퓨터 세상의 지존은 게이츠였다.

이 때 실리컨 벨리에 엉뚱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진원지는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 회장. 엘리슨은 잡스보다 10년위였지만 잡스와는 가장 친한 친구로 유명했다. 그는 잡스와 닮은꼴이다. 양자로 자랐고, 고졸 학력에 컴퓨터의 컴자도 몰랐지만 대기업을 상대로한 서버장비 세일즈로 시작해 오라클을 세우고 수십억달러의 재산을 축적한 자수성가 기업가였다. 또 막가파 행동으로 따지면 잡스 뺨치는 사람이었다.

96년 초여름 엘리슨은 기자들을 모아놓고 대뜸 “애플구하기 일병”을 자임했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애플을 구하기 위해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해서 스티브 잡스를 대표로 앉히겠다고 한것이다. 월 스트릿과 실리컨 벨리 언론은 엘리슨의 말을 대서특필했다.

엘리슨은 항상 잡스를 부러워했다. 실리컨 벨리 최고의 스타 대접을 받는 잡스를 보면서 자신도 스타반열에 오르고 싶어했다. 하지만 희망사항일 뿐. 엘리슨의 애플합병 해프닝에 대해 잡스는 "나에겐 픽사와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고 애둘러 부인하는 성명까지 발표해야했다. 엘리슨은 잡스에게 총알은 충분하다며 자신의 진심을 믿으라고 했다. 하지만 잡스는 “만약 내가 애플에 복귀한다면 애플이 진심으로 원해서야지 적대적 합병이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일을 벌일 필요가 없다”고 엘리슨을 달랬다.

당시 애플은 총체적 난국을 상징하는 난파선 형국이었다. 92년까지만 해도 주가는 60달러대를 달렸고 IBM 다음으로 전세계 최대 컴퓨터 제조사였다. 하지만 10년전 잡스가 만든 매킨토시 운영체제만 움켜쥐고 고가 전략을 유지해 매출은 날개없는 추락신세였다. 게다가 94년 마이크 스핀들러 애플대표는 마이크로소프트 따라하기를 결정했다.

매킨토시 운영체제는 애플 컴퓨터만의 전유물이었지만 모토롤라, 유맥스 등의 컴퓨터 제조사에게 운영체제를 라이센스로 팔기시작하면서 소위 “클론” 제품이 등장했고 제발에 총을 쏘는 패착이었다. 사람들이 매킨토시와 똑같으면서도 값싼 클론 제품을 선호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96년 첫 4분기 6천9백만달러 적자를 기록한 애플은 길 아밀리오를 대표로 영입했다. 아밀리오가 취임하기 전까지 애플 이사회는 AT&T, IBM, 선 마이크로시스템, 토시바, 캐넌, 소니 등을 찾아다니면서 회사인수를 제의했지만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내셔널 세미컨덕터 출신의 아멜리오는 뚝심하나만 믿고 밀어붙이기로 소문난 경영인. 그는 컴퓨터 업계의 선구자격인 애플의 대표로 취임하자 두가지 타개책을 내세웠다. 적자구조 개선과 차세대 운영체제 개발. 30%에 달하는 1,300명의 직원을 감원하고 불필요한 부서를 통폐합하면서 긴축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700만달러의 연봉과 2600만달러의 스톡옵션을 받아 챙겼다. 또 자신의 사무실 인테리어를 새로꾸미는데 700만달러씩이나 퍼부어 뉴욕타임스의 비판까지 받았다.

아멜리오는 애플에서 신제품을 내놓기 위해선 새로운 운영체제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애플은 84년 잡스가 만든 매킨토시의 차세대 버젼을 수없이 약속했지만 매번 실패하고 말았다. 아밀리오는 애플 스스로 차세대 운영체제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외부로 눈을 돌렸다. 그가 먼저 찾은 것은 BeOS.

프랑스 출신의 쟌 루이 가세가 개발중인 운영체제였다. 가세는 또 존 스컬리 시대에 잡스 후임으로 애플의 기술담당 부사장을 역임했었다. BeOS는 매킨토시처럼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 기반이었고 저급 사양의 컴퓨터에서도 무리없이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획기적인 운영체제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가세가 천재적인 프로그래머임은 사실이지만 일을 끝까지 마무리 짓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BeOS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11월 중순경 넥스트의 한 직원이 애플에서 새로운 운영체제를 모색한다는 실리컨 벨리의 소문을 접했다. 특별하게 전략적으로 생각할 것도없이 그는 그냥 애플 담당부서에 전화를 걸어 넥스트 운영체제는 어떻겠냐고 전했다. 월요일의 일이었다. 화요일이되자 애플에서 컨퍼런스 콜을 하자고 연락이왔고 수요일엔 애플 본사에서 하루종일 넥스트 엔지니어와의 마라톤 회의가 이어졌다. 아밀리오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것처럼 만족해하며 넥스트 엔지니어들에게 추수감사절 연휴가 끝나면 다시 모이자는 약속을 했다.

이 모든 상황을 잡스만 모르고 있었다. 엔지니어들은 첫째로 애플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잡스가 이런 사실을 먼저 알았다면 "안돼"라고 말할 것을 겁냈다. 조용히 이야기 한번 해보자고 시작한 것인데 화끈한 성격의 아밀리오덕에 일사천리에 애플의 구애가 시작된 것이다.

애플과의 회동 이후 넥스트 운영체제 책임자인 버드 트리블과 애비 태버니언이 잡스 사무실을 찾아갔다. 트리블은 메디컬 닥터 학위와 컴퓨터 박사학위를 소유한 엔지니어로 잡스와 함께 매킨토시를 개발한 주역이었다. 또 태버니언은 카네기 맬론 대학에서 유닉스 마흐커널을 개발한 천재 프로그래머로 넥스트 운영체제의 뼈대를 만든 사람이다. 두 사람의 공동작업을 넥스트 운영체제는 어떤 하드웨어로의 이식이 가능한 것이었다. 트리블과 태버니언은 잡스에게 진행상황에 대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추수감사절 연휴가 끝나자 월스트릿저널에 특종보도가 떴다. “애플, 넥스트 운영체제 인수 계획한다.” 97년을 앞두고 실리컨 벨리 최대의 사건으로 기록돼다.

아밀리오는 깊게 생각하는 경영인이 아니다. 매사에 즉흥적으로 자신의 감을 믿던 사람이다. 그는 애플 공동창업자였던 잡스의 넥스트 운영체제를 갖게된다면 다시한번 애플 광풍이 불어올 것으로 생각했다. 더불어 떨어지는 주가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였다. 또 자신이 받게될 스폿라이트를 염두해뒀다.

사실 잡스에게 더 중요한 기회였다. 픽사에서처럼 반전 드라마가 또다시 벌어질 판이었다. 잡스는 더 이상 애플과의 구원을 따지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아밀리오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산책이나 나가자고 앞장섰다. 아밀리오는 당시를 “딱 키노트를 연상하면 된다”고 회상한다. 캘리포니아의 저녁 노을을 뒤로한채 잡스는 넥스트 운영체제가 애플에 필요한 이유를 조목조목 정확하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설명하면서 그에 대한 가장 합당한 가격을 제시했다.

아밀리오는 그 자리에서 잡스의 조건을 모두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단, 한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BeOS의 두배나되는 4억3천만달러에 넥스트 운영체제를 구매하는 대신 잡스와의 계약을 원했다. 이는 잡스가 또 다른 운영체제를 만들지 않겠다는 확약을 받기 위함이었다. 아밀리오는 너무나 순진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미 상장기업 픽사의 대표이사였던 잡스는 애플에 묶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쫓아낸 회사에 볼모로 잡힌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잡스와 애플과의 힘겨루기가 시작됐고 협의는 난항에 빠졌다. 넉넉한 금액을 제시한 아밀리오는 잡스가 사인할것을 낙관하면서 대대적인 생방송 기자회견 행사를 준비했으나 두번이나 취소해야했다.

크리스마스연휴를 앞두고 세번째 행사날이 잡혔다. 기자회견장에 50명이 넘는 기자들이 도착했고 애플 이사회 회의장엔 아밀리오 대표와 20여명의 애플 간부들이 모였다. 마지막으로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변호사 래리 선씨니를 대동하고 회의장에 들어왔다.

운명적인 순간 잡스는 자신의 의도대로 드라마를 연출하는 능력의 소유자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잡스는 애플 간부들을 똑 바로 쳐다보면서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독백을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나는 누구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내 말 맞지, 래리? ”
부동자세로 앉아있던 그의 변호사는 단호한 어조로 “예스”라고 답한다.

“현재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픽사와 내 가족이야, 그렇지 래리?”
“예스.”

“나는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네, 안그런가 래리?”
“예스.”

잡스식의 최후통첩이었다. 잡스의 계약 수락을 기대했던 애플측 파트너들에게 싫으면 관두자는 것과 같았다. 아밀리오는 더 이상 잡스를 계약의 올가미에 엮을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신 잡스에게 "비공식 애플 어드바이저"가 되달라고 간청하고 있었다.

“오케이, 아밀리오!”
애플을 떠난지 11년. 잡스의 재림은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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